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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고든/김우영 역] 현대 일본의 역사(2002)

독서일기/일본

by 태즈매니언 2018. 2. 2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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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벽돌 책.

 

하버드대학교의 앤드루 고든 교수가 2002년에 펴낸 책입니다. 제가 본 초판은 2005년에 번역되었더군요. 나중에 두 권으로 나뉜 개정판이 나왔는데 저는 본문이 600페이지쯤 되는 초판으로 봤습니다. 부록에 1945~2000의 중의원 총선거 정당별 득표수와 의석수 자료가 붙어있는데 인상적이었어요.

 

비록 일본 통사는 아니지만 일본사를 충실하게 잘 정리한 역사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일본현대사를 공부하기에 아주 좋은 책이네요. 도쿠가와 시대 후기부터 2001년까지 약 200년 동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분량상 동시대의 세부적인 국제적 사건들과 이 기간 동안 명멸했던 인간군상들의 드라마를 꽤 생략하다보니 생동감은 덜하긴 하네요.(하라 다카시같은 예외도 있습니다. ㅎㅎ)

 

하지만 잘 정리된 요약강의를 듣는 것처럼 치우치지 않은 성실함과 꼼꼼함이 이 책의 미덕인 것 같습니다. 라이샤워 연구소에 있었던 미국인 학자지만 일본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딱히 미국을 변호하는 편도 아니네요. 존 다우어 교수가 극찬을 하실만 합니다(추천사가 뒷표지에 있어요).

 

저자가 일본 근현대노동운동사를 전공했고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읽은 게 없다보니 공사분야의 노사관계 분야에서 첨 들어보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1959~60년 규슈 남단의 미이케 탄광노동자들과 미쓰이 사이의 파업과 직장폐쇄를 통한 대결은 1980년대 영국의 탄광노동자들과 대처정권의 대결처럼 大會戰이더군요. 메이지 신정부가 1874년 타이완 섬에 3천명의 원정군을 파견했던 사실,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단체인지 의문이 드는 재향군인회가 1910년 일본의 제국재향군인회를 모델로 했다는 점, 노사협의회제도의 연원도 독일 나치정권이 국민노동조직법에 따라 공장 내 자문위원회를 의무화한 것을 따라 직장협의회 제도에 있었다는 점은 처음 알았습니다.

 

두번째로 첨부한 사진은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묘사한 1930년대 중부 대평원의 빈농 여성의 사진을 봤을 때처럼 충격적이라 공유해봅니다. 제 할머니뻘 세대도 그랬지만 당시 일본의 농촌여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를 감히 헤아리가 어렵군요.

 

이 책을 읽으면서 1910~20년대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을 통해서 '근대(modern)'를 접했고, 우리네 조상들이 그 짧은 기간과 식민지인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그럭저럭 흉내를 낼 수 있을 정도로 꽤 많은 부분을 배웠구나 감탄했습니다. 전 경성의 모던걸과 모던뽀이부터 눈에 들어왔었는데 말이죠.

 

이제 슬슬 책장에 고이 모셔둔 <조용한 혁명>을 집어들 차례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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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일본에서 엘리트 주도의 혁명이 발생했던 것은 사무라이 계급의 특성-약점과 강점-때문이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무라이가 토지를 확보한 엘리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다이묘로부터 봉급을 받는 피고용자였다. 이들의 신분은 세습되었지만, 유럽식의 봉토나 중국의 신사(紳士)와 조선의 양반이 보유하던 토지와 같은 일종의 사적인 재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었다.

 

326

 

중국문제에서 서양과의 외교적 협조를 거부하려는 일본인의 열망은 부분적으로 미국이 일본인 이민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분노에서 연유한 것이다. 1900년대 초까지 하와이와 미국 본토의 일본인 이민은 10만에 육박했다. 이른바 황화(黃禍)의 위협을 들먹이며 이민에 반대하는 정서는 특히 미국 서해안지대에서 두드러졌다. 이 지역에서는 황인종이 백인과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법률로 못 박고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8년 사이온지 총리와 이른바 신사협정을 맺음으로써 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긴 했지만, 이 협정을 계기로 일본정부는 미국 이민을 철저히 제한하게 되었다.

 

이미 미국에 살고 있었던 일본인에 대한 미국인의 차별은 전혀 신사적이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새로 제정된 법은 일본인의 토지소유와 장기임차를 금지했다. 미국 대법원은 1922년에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게 이민은 귀화를 해도 미국시민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924년의 새 이민법, 이른바 배일이민법은 일본인의 이민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사실상 신사협정을 파기했다. 이러한 조치는 전후 국제 협조체제의 일반적인 정신에 위배될 뿐 아니라, 특히 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문호개방정책을 지지해달라고 일본에 요청하던 미국의 입장에도 타격을 주었다.

 

470

 

배우자의 연간소득이 1만 달러 미만일 때는 (근로소득)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지만 그 수준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서는 일차 소득자의 경우보다 훨씬 높은 세율이 적용되었다. 이 규정은 기혼 여성이 시간제노동 이상의 일을 할 의욕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497

 

1956년에는 백화점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으로 온갖 종류의 '영세'점포가 즐비하던 도심과 근교의 1천여 군데 쇼핑 구역에 대형 도매상이나 슈퍼마켓이 들어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런 소형 점포는 어지럽게 뻗어 있는 고도성장기 일본의 도시경관에 소박한 정취를 가미했다. 상점주와 종업원들은 도시지역에서 자민당의 결정적인 표밭 구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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