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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 솔/정해영 역]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2014)

독서일기/경제학

by 태즈매니언 2018. 3. 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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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k라고 불리는 직종의 일원이다보니 bean counters라고 불리는 회계사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민간투자사업 관련 업무에 고양이손으로 동원되어 보니 겨우 미시와 거시경제학 수업들은 건 아무 소용이 없네요.

 

회계를 모르니 금융을 모르고, 민투사업에서 회계와 금융을 모르는 변호사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요...'회계는 기업의 언어'라는데 회사다니던 시절에 왜 회계원리라도 공부해두지 않았는지 아쉽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면서 봤던 황밍허의 <법정의 역사>가 떠올라 회계분야를 진로로 생각하는 20~30대들에게 추천합니다.

 

저자 제이컵 솔이 14~16세기 서유럽의 지성사와 문화사도 아우르고 있다보니 역사적인 인물들 간의 관계나 소소한 지식들을 귀동냥하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어제 평창조직위가 동계올림픽 프로젝트 손익분석결과라고 배포한 보도자료 똥글에 대해서 회계전공자로서 격조있는 코멘트를 해주셨던 이한상 교수님께서 아래와 같이 추천사를 쓰셨더군요. 아직 2월이지만 벌써 제 올해의 책 후보로 올릴만 합니다.

 

"경제의 성장과 역사의 발전은 권력자가 투명성과 책임성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결정되었다.성장에 한껏 취해 투명성을 무시할 때 거품, 폭락, 몰락이 발생했고, 책임과 투명성을 통한 신뢰가 대중의 호응으로 이어질 때 진보와 번영이 달성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자명한 진리에 대한 역사의 귀중한 증언이다. 위정자와 시민 모두가 읽고 되새겨야 할 귀한 교훈을 담은 필독서이다." - 이한상(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저는 이 책덕분에 상법에서 상업장부에 관한 규정(제29조~제32조)과 <국가재정법>, <자본시장법>의 제정목적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아래 조문이 담고 있는 수천년 동안의 경험과 지혜가 새롭게 느껴지네요. '회계(accounting)'에서 '책임성(accountability)'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상법 제29조 (상업장부의 종류·작성원칙) ① 상인은 영업상의 재산 및 손익의 상황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회계장부 및 대차대조표를 작성하여야 한다.
② 상업장부의 작성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한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공정·타당한 회계관행에 의한다.'

 

13세기 북부이탈리아 지역에서 아라비아 숫자와 주판(산반)을 사용하여 계산의 속도와 정밀도가 향상되었고, 14세기 같은 지역에서 문장으로 기술하는 복식부기가 출현하고, 제노바 시는 <은행 방식에 따라 기록되어야 할 원장에 관하여'라는 법을 통해 매년 2명의 국가 회계사들이 사업장부를 감사(audit이라는 말 자체가 회계기록을 귀로 듣던 시절에 나온 표현이라네요.ㅎㅎ)했다니. 송상들이 사개부치법이라는 복식부기를 썼다지만 이런 시스템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중세 은행가의 아들이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가 일으켜 15세기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된 메디치 가문의 흥망이 가주의 회계에 대한 숙련성에 좌우되었다니(기독교세계에서 십일조를 거뒀던 교황과 상거래를 했던 덕택이기도 하지만).

 

두 번째 사진에서 우측 뒤편의 귀족을 제치고 앞에 서 있는 인물은 토스카나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수사이자 수학자 파치올리인데 이 책을 통해 회계의 역사를 훑어보고 나니 왜 파치올리를 '회계의 아버지'라고 하는지 이해가 됩니다.

 

파치올리를 비롯한 북부이탈리아의 회계문화는 저지대로 전파되어 네덜란드령 동인도회사의 부흥에서 보듯 인구 백만의 이 작은 국가가 번영하는 원동력이 되죠.

 

이후 회계문화는 프랑스로 전파되어 유명한 리슐리외 추기경의 후계자였던 이탈리아 출신 쥘 마자랭의 개인회계사였던 장 바티스트 콜베르가 마자랭의 유언으로 루이 14세의 신임을 얻어 왕국의 재정을 중앙집중적 회계에 따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콜베르가 죽고 루이 14세가 대외전쟁비로 탕진잼했지만)

 

회계문화는 도버해를 건너 입헌군주국이다보니 1644년에 국가의 세수관리를 담당하는 '회계위원회'가 존재하였고, 1742년까지 무려 21년간 총리로 집권하면서 조지 2세로부터 다우닝가 10번지(지금의 영국 총리관저)를 선물받은 구제금융의 발명가 로버트 월폴 수상의 영국에서 숙성되고, 루이 16세 시절인 1781년 프랑스에서는 스위스 은행가 출신의 재무총감 네케르가 왕실 재정보고서를 출판하기도 했더군요. 아시다시피 이 보고서 공개는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죠.

 

네케르의 영항과 식민지 개척시대 이래 회계장부 밖에 믿을 것이 없는 합작투자자들 덕분에 개척된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후손들이 영국의 회계문화를 충실히 받아들인 것은 쉽게 이해가 됩니다. 철도건설사업의 막대한 규모가 규제의 필요를 불러일으켜 '주간통상위원회'의 탄생과 연방권력의 강화를 가져왔다는 건 알았지만 철도회사 회계문제로 인해 '공인회계사'도 출현하게 되었다니 신기하네요.

 

2008년 금융위기를 막아내지 못한 책임자들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SEC(증권거래위원회)가 1933년 제정된 글래스-스티걸 법의 후속조치로 1934년 설립된 기관이고, 초대의장 (내부거래의 명수였다는) 조지프 케네디가 존 F. 케네디의 아버지라니.ㅎㅎㅎ 2009년 국내에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으로 IFRS가 도입되기 전까지 통용되던 회계기준인 GAPP도 이 시절에 민간 회계사들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부과된 공식적인 감사지침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재무제표도 볼 줄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회계의 역사에 관한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추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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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쪽

 

(14세기에 토스카나에서 활동한 거상) 다티니 문서고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는 죽을 때 12만 4,549부의 상업 서신과 573권의 회계장부와 원장을 남겼다.이 자료들은 중세 시대 최대의 개인 재무 기록 보관소인 프라토 박물관에 여전히 보존되어 있다.

 

89쪽

 

역사적으로 이탈리아에서 'magnufico'는 묘한 단어이며,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그 단어는 오늘날 로렌초의 반항적인 얼굴과 권력, 예술적 후원과 결부되지만,1400년대에는 사실 은행장을 가리키는 기술적 경칭, 곧 '나의 위대한 사장님(magnifico major mio)'이었다.

 

121쪽

 

(16세기 카를5세 당시) 인구가 100만 명도 안 되는 네덜란드 시민이 기여하는 세수가 무려 그보다 열 배나 되는 인구를 가진 스페인 제국이 거두어들이는 세수의 40%를 차지했다.
(이러니 스페인 제국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쉽사리 허용하지 못했군요. 원래 충실한 신민들이었는데 그냥 종교탄압만 하지 말 것이지. --;)

 

258쪽

 

(1781년 재무총감 네케르가 정부의 재정상태를 설명한 <왕에게 드리는 보고서>는) 팡쿠트가 인쇄한 6만 부는 한 달 만에 품절되었다. 1781년 한 해에만 10만 부 이상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의 기준을 바꿔놓았다. 또한 추가로 수천 부가 외국어로 번역되어 인쇄되었다.

 

309쪽

 

당시 가장 큰 직물 공장이 네 세트의 회계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1857년 펜실베이니아 철도는 144세트의 회계 기록을 갖고 있었다.이 기록들은 편집된 뒤 종종 월별로 인쇄되었고, 연례 보고서용 표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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