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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전쟁과 역사 03 전란의 시대: 고려후기편(2008)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18. 3. 6.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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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임용한 박사님의 <전쟁과 역사> 삼부작의 완결편입니다.

2편이 고려vs거란, 고려vs여진 전쟁에서 큰몫을 했던 인물들을 재조명했다면 3편은 전근대 사회에서 국가는 신민들에게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네요. 역사를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점에서 볼 때 저는 삼부작 중에서 이번 편이 가장 빼어나다고 느꼈습니다.

 

대토지겸병으로 사족과 향리가 분리되고 지방의 무력도 주진군과 주현군은 유명무실해지고 상시적인 전란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권문세족의 가노가 되기를 자청할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의 처지를 읽으며 여말선초에 왜 이리 인구분포 중 노비들이 절대 다수였는지 이해를 하고, 웅기하던 여진도 한 수 접어주고 건드리지 않았던 수성전에는 일가견이 있던 고려군이 12세기 이후에 왜 갑자기 이리도 지리멸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타임슬립해서 12~14세기의 고려에서 일반 백성으로 살아보시라고 권하고 싶고요.)

 

고려말에 살았던 삼봉 정도전이 꿈꿨던 이상적인 유교국가가 어떤 진창같은 현실에서 핀 연꽃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 전기에 완성되어서 임진년과 정유년의 조일전쟁 때 활약한 조선수준의 편제와 무장이 어떠한 역사적인 연원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소득이고요.

 

단괴형 반도라는 자연지리적인 특성상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고려시대가 생각보다 봉건국가에 가까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지방관 파견도 제대로 못하고 하지만 왕이 몽진하다가 경기지역만 벗어나자 차마 임금이라고 내세우지도 못한 채로 가는 곳마다 호족들의 노림 대상이 되

거나 비적떼에게 쫓기는 처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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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쪽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주의가 아니다. 민족의 독립과 보존, 민족의 이익, 민족의 발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것이 민족주의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족주의는 민족에게 이익이 된다면 국제관계에서의 타협과 협력, 외국문화의 수용을 얼마든지 허용해야 한다. 자존심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분쟁을 일으키거나 외곬로 나가는 것은 참된 민족주의라 할 수 없다. 국가의 정책은 동기가 아니라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부식의 친금정책이 오히려 자주적이고 민족주의적이다.

 

125쪽

 

몽골군은 부대를 나누어 먼저 주변을 휩쓴다. 상식과 지도를 무시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을 공격하니 도로는 끊기고, 성들은 고립된다. 전략요충인 대읍에는 병력이 모이지 않고, 전선은 형성되지 않는다. 몽골군은 이런 방법으로 성들을 고립시키고, 대읍으로 집결할 병력을 제거한 뒤에 영양실조에 걸린 전략요충지를 공략한다. 따지고 보면 몽골군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술학의 명제를 무시한 적이 없다.

 

164쪽

 

피난, 소개전술, 청야작전이라는 것도 국가가 제대로 된 방어전선을 형성하고 방어거점을 마련해서 전투를 할 때 가능한 이야기다. 몽골군은 이 땅을 자기 땅처럼 돌아다니고, 척후도, 경보장치도, 달아날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몽골군이 오면 그들보다 빨리 몽골군이 오지 못할 곳으로 피난하라는 이야기는, 나는 모르겠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말의 공문서식 표현에 불과하다.

 

대몽항쟁에는 이기기 위한 전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술 자체가 없다. 그들이 말한 전술이란,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몽골군의 2차 침공부터는 전쟁이 사라진다. 정부군도 없고 전선도 없고, 하다 못해 조직적인 유격전술조차 없다.
(중략)
간혹 야별초가 성의 군사를 지휘하여 몽골군을 물리쳤던 사례도 있지만, 거의 드러나지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파견 역시 전투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국가가 행정력과 지배력을 놓지 않으려는 시도다. 전술이 없고, 전쟁은 알아서 하라고 지방민에게 떠넘겼다고 해서 정부 스스로 이를 공포하고 분리 독립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몽골군이 이 땅에 들어와 있는 기간보다는 없는 기간이 더 많았다. (강화도)정부는 이 평화기(?)에 세금과 주민에 대한 관리권까지 포기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244쪽

 

한두 가지 요소로 인간의 행동을 재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삼별초 문제를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선과 악을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으로 보는 개념 때문이기도 한다. (중략) 역사 속의 사건을 선과 악이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중략)
세상에서 제일 잔혹한 사람이 인간의 행동을 한 마디로 규정하고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정작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때는 그 행동 외에 선택할 삶이 없었노라고. 진정한 역사가라면 선악을 나누기 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따져야 한다. 무엇이 그들의 사람을 그러한 선택 속으로 던져넣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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