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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내현]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2014)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18. 8. 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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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부제가 모두 멋지지 않은가?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어느 노비 가계 2백 년의 기록>이라니.

조선후기 향촌사회의 신분제도와 노비제도의 작동방식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린 시절, 어차피 실제 양반은 10% 남짓이었고, 난중일기 말고는 조선왕조 실록에 변변한 토성 인물도 배출못한 전남 보성의 초면인 할배들이 남의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5대조가 누구였네, 시제를 잘 모셔야 한다고 훈수두는 거 무릎꿇고 듣는 게 참 고역이었다.

 

요즘은 이런 사람이 거의 없긴 하지만 사람 거르는 지표 중 하나가 양반가문이나 조상 벼슬이야기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아그라리아 세계관을 인더스트리아 시대를 사는 내가 굳이 좋게 이해해줄 생각은 없다.

기대했던 것처럼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거나 반촌을 형성하고 주변의 양반 가문과 통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자기네들 내부에서의 벼슬과 특권 경쟁도 노론 중 일부로 좁아져가던 19세기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저자가 논문으로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한 대중교양서인데 국사학계의 학자들이 이런 교양서를 많이 펴내고 사람들도 찾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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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조선 후기에는 각 군현에서 3년마다 호적을 만들 때 모두 3부를 작성해서, 1부는 해당 고을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감영과 한성부로 올려 보냈다.

 

65쪽

 

100세가 넘는 노비들은 이처럼 행방이 묘연하거나 사실상 도망간 이들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적에 그들의 이름이 계속 올라가 있는 것은 노비 소유권에 대한 주인들의 집착 때문이었다.

 

87쪽

 

노비의 노비 소유만이 아니라 토지소유도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1720년 경상도 용궁현에서는 전체 토지가운데 약 10%를 노비가 소유하고 있었다. 이 뿐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여러 지역의 고문서에는 노비들이 자신들의 토지를 매매하는 내용의 문서가 다수 존재한다.

 

189쪽

 

족보가 얼마만큼 사실을 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족보 그 자체가 부계친족 집단의 발달과 양반 지향의식의 산물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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