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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한식의 품격(2017)

독서일기/음식요리

by 태즈매니언 2018. 3. 1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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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후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세 끼 중 상당수를 한식으로 먹으며 살아가는 한국사람들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 저자가 쓴 책은 읽지 않는 분들도 밥은 먹고 살지 않는가. 그래서 한국에서 성경보다 더 많이 팔려야 한다. 나도 빌려서 봤지만 그래서 저자의 책을 두 권 주문했다. 저자가 추천한 <The Food Lab>이 번역되어 나왔길래 그 것도 같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이것저것 먹어보다 보니 한식(韓食)에 대한 아쉬움들이 생기긴 했지만 난 그 이물감을 제대로 설명해낼 수가 없었다, 최근 빠르게 발전한 가정용 간편식의 수준보다 떨어지는 내가 만드는 음식들에 대해 답답함이 생기면서 요즘엔 요리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고.

 

이 책을 통해서 요리를 대하는 내 기본 자세가 틀렸음을 깨닫게 되었고 시야도 넓히게 되었다. 저렴한 대용량 냉동다진마늘을 때려부어서 알리오올리오를 만들면서, 어떻게 통마늘 껍질부터 벗기고 칼옆면으로 두드려서 내는 ...향을 얻으려 했는지.

 

유용한 지식들도 많이 주지만 너무나도 익숙해진 일상의 음식에 대한 낯설게 보기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딱 마이클 폴란의 저작 정도에 멈춰있었던 내게 한 차원 높은 시각을 갖게 해준다. 저자의 노력이 아주 많이 들어간 것도 느껴진다. 엔지니어인 건축학도답게 과학과 이성에 기반을 두고 (감성의 영역을 무시할 수 없는) 한식의 맛과 원리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하는 이용재씨만큼 한식에 대해 애정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좋은 내용들이 정말 많아서 인용하려면 끝이 없다.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자 아무 페이지나 펴서 네 곳만 인용해봤다.

 

P.S. 역시 요리도 이과출신들이 잘 할 수밖에 없구나. 도대체 문돌이는 어디에 쓰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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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용 가스레인지의 출력은 평균 7,000BTU인 반면, 음식점 주방의 웍 전용 화로는 대개 여섯 자리, 100,000BTU 선에서 시작한다. 전문적인 손길이 엄청나게 다른 환경에서 다뤄 볶고 튀기는 것이다. 조리의 원리는 같지만 환경이 다르니 음식 맛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 식문화는 이런 차이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떨어진다. 사 먹는 경우, 즉 집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에 대한 기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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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서의 맛 가운데 사실 80% 이상을 후각이 차지한다. 달리 말해, 우리가 이라고 여기는 경험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향이다. 따라서 후각적인 요소는 음식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같은 음식에 향신료나 허브 등만 달리 써 마무리해도 사뭇 다른 표정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한식에서는 이러한 후각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떨어진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긍정적인 냄새라는 게 발효된 장류를 바탕으로 한 구수함(예를 들어 된장), 즉 낮게 깔리는 냄새다. 한편 대부분의 냄새는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되어 잡내와 마찬가지의 의미로 통한다.

 

221

 

가장 두드러지는 예가 커피다. 섬세하고 복잡한 맛을 살리기 위해 끓는 물에서 추줄하면 안 되고, 내온 걸 바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하되 뜨거워서는 안 된다. 굳이 수치를 언급하자면 70도대를 넘기면 안된다. 커피의 수준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한참 더 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도구로 정확히 확인하는 수치의 중요성에 대한 개념이 들어서지 않았다. 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이미 수치로 확실히 정립된 세계를 침범해 약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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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가지 하나도 제대로 못 볶아 먹을까. 헤아라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인 가지에 대해 헤아리지 않고, 조리법인 볶음에 대해 헤아리지 않는다. 두이 결합되어 나오는 조리의 목적이나 맛에 대해서도 당연히 헤아리지 않는다. 어떤 재료인가? 어떻게 조리하면 가장 맛있을까? 그 조리법을 채택할 시간은 충분한가? 조리는 문제 해결 과정이다. 가급적 모든 요인을 헤아려 상황에 최선인 답을 찾아야 한다. 습관적으로 그저 익히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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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의 이미지 하락의 문제는 비단 분식 영역의 문제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다. 한국 식문화의 지붕 아래 전 음식 종류에 걸쳐 확인할 수 있다. 떨어진 품질을 노동력의 헛된 투입으로 가리려 든다. 요컨대 맛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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