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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이은선 역] 화성의 인류학자(1995)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18. 7. 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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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최근에서야 알게된 작고한 뇌신경전문의 올리버 색스 선생님의 일곱 편의 병력 관찰기.

 

자기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려면 이런 훌륭한 저자의 교양서를 잘 만나야 한다. 마빈 해리스를 통해 인류학에 관심을 가졌고, 프란스 드 발을 통해 영장류행동학에 대해 알게 된 것처럼 인간의 뇌신경과 관계된 결함, 질병을 통해서 인간의 창의성과 발달과정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올리버 색스는 머리말을 '이 책은 신경병으로 인해 변화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대안의 존재방식, 새로운 생활모습,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화한 사람들의 기록이다.'라고 끝맺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뇌색맹, 기억상실, 투렛증후군, 맹인, 자폐증의 사람 일곱 명을 통해서 인간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서도 그랬지만 올리버 색스가 관찰한 신경병 사례 중에서 나는 자폐(특히 아스퍼거 증후군)가 가장 흥미로웠다. 일곱 편의 병력관찰기 중 마지막 편인 <화성의 인류학자>편의 주인공 템플 그렌딘의 이야기는 어떤 영웅서사시 못지 않은 감동을 줬다. 정말 잘 붙인 제목이고, 이 책의 제목으로 따온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자가 극찬한 알렉산더 루리아의 저작 중에 국내에 번역된 책이 한 권도 없어서 아쉽지만 대신 템플 그랜딘의 책은 네 권이나 번역되었으니 구해서 읽어봐야지. 그리고 아스퍼거 증후군에 관한 책도 찾아서 봐야겠다.

 

그나저나 뇌종양이 자라서 뇌하수체와 전두엽을 파괴당한 히피청년을 두고 그가 '예지자'가 되었고, 눈이 침침해지는 증상은 '내면의 빛'이 자라는 증거로 해석했던 스와미 크리슈나 신도들이나, '왁스먼-게슈빈트 증후군(도스토예프스키 증후군)을 보고 신내림(무병)이라고 불렀던 사람들, 전두엽절제술을 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신경병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고난의 시대를 살아왔구나.

 

아 그리고 평생 맹인이었던 사람을 종교인들이 앞을 볼 수 있게 눈을 뜨게 해줬을 때 '오오 보인다 보여'라고 말하는 클리쉐는 뇌신경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개소리라는 것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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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쪽

 

(베넷) "투렛증후군은 신경게 깊숙한 곳과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질병입니다. 가장 뿌리 깊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죠. 투렛증후군은 피질 하부가 간질에 걸린 것과 비슷합니다. 일단 발작이 일어나면 그것과 나, 미칠 듯이 불어 닥치는 폭풍, 피질 하부의 그 맹목적인 힘과 나 사이에 남는 것이라고는 실낱같은 자제력, 실낱같은 피질뿐입니다. 투렛증후군 환자들은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독창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자리 잡고 있죠. 그 어두운 부분을 상대로 평생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252쪽

 

(프레드릭 바틀릿) 기억한다는 것은 고정적이고 건조하며 단편적인 수많은 자취를 다시 자극하는 과정이 아니다. 과거의 반응이나 경험이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이미지나 언어의 형태로 개조하거나 구성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상투적으로 줄거리를 요약하는 식의 가장 기본적인 상황에서조차 정확할 수 없고, 정확할 필요도 없다.

 

290쪽

 

백치천재들은 장면, 음악, 어휘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세부 사항을 기억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머릿속에는 큰 것과 작은 것, 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이 전후좌우 구분 없이 무작위로 섞여 있고, 세부 사항을 일반화시키거나 인과관계 또는 시간 순서에 따라 통합하지 못한다. 따라서 자폐성 천재들은 장면과 시간, 내용과 문맥이 부동의 관계를 맺는 기억(이른바 구체적 상황성 기억 혹은 일화성 기억)에 이르면 있는 그대로 상기하는 능력은 뛰어난 방면, 특정 기억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추출해 일반적인 개념을 구축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느낀다.

 

350쪽

 

'고도의 능력'을 갖춘 자폐증 환자들은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라고 불린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과거의 경험과 느낌, 심리상태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의 미릿속에는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자의식이 있고, 부분적으로나마 자아성찰과 보고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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