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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복,임동우] 알파하우스를 꿈꾸다(2016)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18. 8. 27.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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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시립도서관에 갈 때면 빌려올 책들의 서지번호를 미리 찾아놓고 서가에서 빼내 바로 대출해오는데 우연히 눈길이 간 책이다. '살림집 말고 다른 집'이라는 카피가 일단 내 흥미를 끌었다.

내겐 아직 먼 일이긴 하지만 직장때문에 세종시로 내려왔고 식구도 단촐하다보니 내년에 들어갈 아파트 이후의 주거형태에 대해 선택지가 넓은 편이다.

아파트는 오롯하게 주거측면에서 효율화된 공간이기에 다른 기능을 담은 공간을 원하는 내 욕심을 채워줄 수 없다. 그렇다보니 탑층에 위치한 복층 테라스 하우스, 아파트와 농가주택의 1가구 2주택, 구도심의 꼬마빌딩을 사서 탑층을 주택으로 저층은 상업공간으로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 아지트 겸 작업실 공단 임차 등 50대 혹은 은퇴 이후의 주거형태에 대해 생각이 많다. 이 네 가지 대안 모두 공동주택인 아파트의 제약에서 벗어나 집과 별개의 공간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좀 더 친밀해지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내 욕심에서 나온 방안들이다.

해이리에 있는 방송인 황인용님의 카메라타 같은 공간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으리으리할 필요는 없고, 살림집과 구분된 '덤'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은퇴해서 직장에서 제공하는 개인연구실이 없어지면 이런 공간의 필요성이 더 간절해지지 않을까?

이 책은 청평에 한 채의 집을 짓게된 이유와 짓는 과정에서의 고민을 공유해준다. 대학교수였던 건축주는 퇴직 후 세미나와 사교모임을 할 수 있는 근대 유럽의 살롱 혹은 조선시대의 정자와 같은 공간을 갖고자 했다.

건축주는 주거공간으로써 아파트의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되, 기존의 '주거중심'으로 소비된 전원주택 문화에서 벗어나 상업공간이나 공공시설이 아닌 액티비티 공간을 바랬다. 펜트리, 창고, 취미방으로 쓸 수 있는 아파트의 알파룸처럼 건축주의 필요에 따라 구성하고 점유할 수 있는 '용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공간'을 원한 것이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도 특이하다. 부자가 같은 학교 건축학과 동문이면서 건축주인 아버지는 30년 동안 대학에서 건축학을 강의한 교수이고, 아들은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실무가이다. 이런 관계에서 집을 지었으니 얼마나 많이 싸웠을지 넉넉히 짐작할만 하다. 대강 30년 터울이라 한옥과 좌식생활에 대한 경험을 가진 아버지와 새마을주택 이후 전면적인 입식공간에서 자란 아들의 차이도 있는 듯 싶고.

그나저나 아무리 100세 세대라지만 자기 취향이 확고한 침실 한 개짜리 2층 집을 지어놓고, 나중에 70대 중반쯤 되어서 운전도 어려워지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지면 집을 처분해야할텐데 이런 개성있는 집을 누구한테 팔 수 있으려나 내가 걱정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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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서울의 아파트 3.3제곱미터당 평규 가격이 2,000만 원을 넘었다고 한다. 부동산에서 단순한 계산이 성립할 리 만무하지만 40평에 살던 노부부가 자녀들이 출가한 이후에 25평으로 이사하면, 3억 원이라는 돈이 생긴다. 알파하우스를 짓는 데 충분한 예산이다. 한 달에 한 두 번 문을 열어볼까 말까 하는 방을 두어 개씩 갖고 있는 것이 낭비인가, 알파하우스를 마련하는 것이 낭비인가, 단순히 경제적인 관점을 벗어나, 과연 어떤 것이 더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일지 고민해보자.
(두 채의 유지비를 생각하면 좀...저도 든든한 사학연금의 은총을 입었다면 ㅠ.ㅠ)

68쪽

소비 활동에 연결되다 보니 친척들과의 행사, 친구들과의 주말 바비큐 파티, 동아리 모임처럼 비교적 긴 시간이 필요한 활동은 철저한 계획을 동반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 영어권 문화에서 이야기하는 'retreat'이 쉽지 않은 것이다.

74쪽

집을 구상하면서 리트릿과 살롱 문화를 염두에 두었다. 가족들에게는 '집에서 보내는 휴가'가 가능해야 했으며, 방문하는 지인들에게는 '살롱 문화'를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82쪽

문제는 최대 용적률이 하나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건축가가 법적 허용 용적률이 100%인 곳에 99.9%의 면적으로 설계하지 못하면 마치 건축주의 부동산 가치를 침해한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설계가 아파트의 미학을 따르는 것이 맞는가.

131쪽

계획 초기에는 식탁을 주방과 마주 보는 곳에 두려고 했지만 '주방에 딸린' 식사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또 한 번 강조하지만, 알파하우스에서의 식사 공간은 친교와 교제의 기능이 우선이기에 오로지 가족의 식사 공간처럼 느껴지는 것을 지양하고자 하였다.

137쪽

과연 책상과 테이블을 놓고 일만 하는 공간이 연구실의 이상적 모습일까. 일하는 공간일수록 바로 옆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능률적인 연구가 이루어진다. 서재가 창의성을 발휘하는 효율적 공간이 되려면 인간의 여가 욕구도 염두에 두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구실이 일터이면서 동시에 쉼터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옳소~~!)

197쪽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주택을 위한 평면이 아니기에 자유 평면(free plan)을 구성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택은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 평면을 구성하는 것이 큰 과제이자 도전이기도 했다. 수헌정에서는 이 부분을 경사진 볼륨을 이용해서 풀었다. 공간과 공간이 꼭 벽으로만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경험 또는 볼륨의 차이로 구분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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