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택 건축디자인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보니 일본의 주택 설계나 시공 수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시스템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몰랐는데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학&일본학 전공자 카텔레이너 뉘에이싱크 덕분에 어떤 연유로 소형 주택에 강점을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건축에 대한 문외한이 이해하기에 버거운 내용들이 많긴 했지만 서문만 읽어도 얻어갈 수 있는 게 많다. 아무래도 건축전공자가 읽으면 더 좋을 책인듯 싶다. 21인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소형주택들을 소개하는데 50년대생, 60년대생, 70년대생으로 구분한 것도 독특하다.
일본에서는 '디자이너 맨션'들이 선호되고 있따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위 '빌라'(주택법상 기준으로는 다세대, 다가구, 연립주택으로 구분되지만)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를 선택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선택지로 소위 집장사들이 지어서 파는 주택이다. 지금은 아파트 전성시대지만 대도시 원도심으로의 회귀 현상이 강해지면 허가방이 아닌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심혈을 기울인 20가구 미만의 집합주택을 개발해서 분양하는 부동산 개발업도 유망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59제곱미터와 84제곱미터 아파트 역시 취등록세 감면기준에 따라 선호되는 주거면적인데, 3~4인 가구가 줄어들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서구식의 nLDK식으로 기능적인 공간배치보다는 한옥이나 일본의 전통주택처럼 공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평면배치로 주택설계가 변화해야하지 않을까? 화장실과 주방 외의 공간만이라도 개인의 취향을 살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의 사진을 두 장 옮겨본다. 1974년생 건축가 다니지리 마코토가 설계한 후쿠오카시의 집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골목길을 집안으로 옮긴 듯한 단층집이다. 각 방의 사면을 외부와 접하게 하면 방의 크기는 작아지지만 질적으로 우수한 공간이 되더라.
둘째 사진은 1956년생 세지마 가즈요씨가 설계한 가나가와현오쿠라야마의 4층짜리 아파트인데 아홉 세대가 사는 집합 주택인데 각 세대마다 단독주택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고, 일층을 정원으로 비운 점도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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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중에서 인상깊었던 부분들
첫째, 일본의 건축가들은 극한의 조건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건축법규를 상대해야 한다. 건물의 형태, 최대 높이와 크기, 내진설계, 건물 간의 의무 이격거리 50cm를 비롯하여 일조권과 조망권까지 일본에서는 모두 규제 대상이다.
(중략)
둘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들은 보통 매우 협소하고 모양이 기묘한 부지를 구입한다. 상속세가 높아 후손들이 토지를 잘게 나누어 판매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략)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주택가치의 하락분을 과세소득에서 공제해준다. 기대수명이 20년인 목조주택은 20년이 지나면 명목상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다. 기대수명이 30년인 콘크리트 주택 역시 30년이 지나면 명목상의 가치가 사라진다. 감가상각에 의해 주택의 가치가 0이 되면 소유자는 그 집에서 계속 살지 아니면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을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때마다 새 건물을 지으면 집주인은 상당한 절세 효과를 누리게 된다.
(중략)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1970년에서 1980년 사이에 태어난 젊은 건축가 세대에게 돌아오는 설계 의뢰는 인테리어 디자인, 리모델링, 가구, 그래픽 디자인, 소형 단독주택과 같은 소규모 프로젝트에 국한되었다. 하지만 젊은 건축가들은 소규모 프로젝트에도 매우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그들이 사용한 설계방법론은 유연하고 다층적이어서 소형 건물뿐만 아니라 가구나 내부 장식, 큰 규모의 건무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115쪽
어느 주택이든 길이나 정원, 자투리 공간 너머로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교류라고 해서 꼭 대화를 주고받아도 사람들 사이에 유대감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또한 자투리 공간에 식물을 심으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자투리 공간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31쪽
정부가 기능에 초점을 맞춘 미국식 아파트를 도입한 지 50년쯤 지난 지금에 이르러셔야 일본 건축가들은 안 그래도 좁은 집을 서양식 주택 구조에 따라 더 작은 방으로 나누면서 집이 더 좁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236쪽
부지가 매우 협소하다고 해도 건축가가 부지보다 더 큰 영역에 대해 신경을 써주면 동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99쪽
오늘날 일본의 대형 구조설계사무소에는 대략 1만여 명의 구조엔지니어가 일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해서 일하는 구조엔지니어의 숫자는 500여 명에 불과하다. (중략) "유럽에서는 구조엔지니어 지망생이 토목공학과에 속해 교육을 받지만 일본에서는 구조엔지니어 지망생과 건축가 지망생이 모두 건축학과에 속해 교육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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