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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젠/김락준 역] 온라인 다음 혁명(2016)

독서일기/테크놀러지

by 태즈매니언 2018. 10. 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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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며칠 플랫폼 사업에 관한 책들을 읽었는데 미국의 네 거인들에 대적할만한 다음 거인이 탄생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지인 중국인들이 보는 플랫폼 사업에 대한 전망이 어떤지 알고 싶어 이 책을 골랐다.

 

왕젠은 특이하게 심리학을 가르쳤던 개발자로 2012년부터 알리바바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마윈 회장의 핵심동료라고 한다. 그는 중국 최대의 클라우드 서비스 알리윈과 모바일운영체제 윈OS를 통해 알리바바를 아마존과 구글을 합친 플랫폼 기업으로 만들고자하는 야심과 그 근거가 되는 비전을 보여준다.

 

왕젠은 먼저 일반인들은 물론 동종 업계 종사자들까지도 '온라인'과 '빅데이터'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 세 가지 개념은 책의 영어판 제목인 'Being Online'의 일부분을 묘사한 표현일 뿐이다.

 

왕젠의 컴퓨터에 깔린 프로그램을 구동하여 인터넷에 접근하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모바일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고, 각 기업들이 제공하는 클라우드 공간에 데이터들을 저장하는 것은 진정한 온라인도, 빅데이터 구축도 클라우드 컴퓨팅도 아니라고 말한다.

 

왕젠이 데이터를 전기로 전류를 온라인으로, 전력망을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비유한 설명을 들으니 이해하기 쉬웠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던 초기에 직류 전기는 최대 5km 밖에 전송되지 않았기 때문에 각 마을이나 공장들은 각자 발전소를 세워야했고, 전기가 필요할 때마다 발전소를 돌려야 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발전소도 버려졌고. 그런데 테슬라의 업적으로 국가가 전력산업을 제대로 운영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를 아무 곳에서나 자유롭게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하고 있다.

 

왕젠은 현 시점의 온라인과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을 전기보급의 태동기와 같다고 본다. 따라서 왕젠이 예상하는  '온라인 다음 혁명(좋은 번역은 아니지만)'은 1890년대의 전기전문가가 예상하는 스마트그리드 정도로 생각하면서 읽으면 종횡무진 도약하는 생각들의 큰 줄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50년 후에 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론>처럼 추앙받는 책이 될지도 ㅋ

 

나는 이 책이 다니엘 예긴이 1999년 펴낸 <시장 대 국가>의 초판에서 끝맺은 시장과 국가 사이에 계속된 고지전의 다음 전투를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실패한 모델인 공산주의와는 다른 '만물인터넷'과 개인의 모든 행위를 빛의 속도로 알아볼 수 있는 천리안인 '온라인+빅데이터+클라우드 컴퓨팅'에 기반한 사회신용평가지수에 의한 통제주의 모델의 싹을 엿본 느낌이다. 나 역시 시장을 믿는 리버럴이기에 이러한 통제주의 모델에 대해 거부감이 느껴지지만 왕젠이 전망하는 비전은 매력적이고 통찰력이 담겨 있다. '중국몽'이라는 네이밍은 여기에 붙여져야 할 것 같다.

 

왕젠이 안드로이드와 맥OS 생태계를 집사의 꽃밭으로 치부하며 보편적인 모바일웹의 세상을 꿈꾸는 스케일은 아마도 다른 나라에서는 무수한 축척의 시간을 통해 법전으로 제도화된 상거래와 금융거래시스템을 알리바바라는 일개 회사가 자국 전체 소매유통의 63%, 중국을 경유하는 전체 화물포장의 54%를 점유하는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한 방에 구축해낸 자신감에서 나온 배포인 것 같다.

 

책 자체를 왕젠 본인이 쓰지는 않은 것 같고, 그가 컨퍼런스에서 했던 강연들을 대필작가가 엮어서 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했던 표현이 서너번씩 반복되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순도 99.99%의 천재라 발산하는 똑똑함의 아우라를 느꼈다. 뒤로 갈수록 스케일이 장난아니고, 구어체라 흡인력도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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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쪽

 

통신회사는 전국 방방곡곡에 통신망을 깔고 자신들이 인터넷 경제를 다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터넷과 통신망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통신망은 특정 기구에 제공하는 작은 범위의 서비스지만 인터넷 경제는 대규모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설 클라우드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회사는 스스로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통신 회사가 자사를 인터넷 기업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132쪽

 

2010년까지 나는 전 세계에서 "'진짜' 클라우드 컴퓨팅을 하는 회사는 한 개 반 밖에 없다. 그중 한 개는 아마존이고 반 개는 구글이다."라고 자주 말했다. 아마존과 구글은 각자 장점이 다르지만 모두 알리윈이 본받아야 하는 롤모델이다. 아마존은 클라우드 컴퓨팅이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의 본질을 실현했다. 구글은 클라우드 컴퓨팅의 규모를 키웠지만 진정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스콧 갤러웨이가 <The Four>에서 아마존을 맨 먼저 서술한 이유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133쪽

 

사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클라우드 컴퓨팅이 공공 서비스로 자리 잡으면 진짜 중요한 일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전혀 무관해진다. 한번 생각해보자. 여름에 에어컨을 켜고 찬바람을 쐴 때,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물을 마실 때, TV를 틀어 SF 영화를 볼 때, 스마트폰 앱으로 친구들에게 연락할 때,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바꿔준 현대과학기술 이를테면 에어컨, 냉장고, TV 스마트폰에 대개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때 공공 전력망까지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공공 전력망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이다.

 

182쪽

 

구글은 공공 데이터를 구글의 것으로 만든 뒤 이를 토대로 거대한 기업을 일궜다. 해저 6,000m에 있는 석유는 이론적으로 전 세계인의 것이지만 결국 그것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 차지한다. 같은 원리로 아직은 구글만 데이터 가치를 개발할 능력을 갖췄다. 알리윈의 바람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서버를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컴퓨팅 능력을 갖춘 기업이 되는 것이다.

 

199쪽

 

안춘테크는 통화내용 공증을 시작으로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해 기존의 공증 방식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놓은 제품이 '안춘'이다. 안춘은 통화내용과 통화시간, 구체적으로 수신자와 발신자가 통화를 시작한 시간과 종료한 시간을 정확히 기록한다.

 

중요한 것은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싶을 때 '951335+상대방 전화번호'를 누르면 녹음 내용이 알리윈의 클라우드 저장소에 보관되어 녹음기를 휴대할 필요도, 녹음 내용을 분실할 일도 없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인터넷만 연결하면 듣기와 다운로드가 가능해 증거 제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통화내용 녹음은 양쪽이 서로 소통하는 현장을 가장 진실하고 완전하게 기록하는 일이다.

 

특히 백그라운드 시스템이 공증기관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공증기관은 법에 따라 공증서를 신속하게 발급해 녹음내용이 법적 효력을 갖게 만든다. 2011년 11월 안춘테크의 951335 통화내용 녹음 플랫폼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제시하는 미래상을 가장 절실히 체감한 내용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격차가 이렇게 벌어졌을 줄이야...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통화내용을 녹취공증 받으려면, 통화중 녹음 버튼을 눌러서 음성파일을 저장한 후에 인정녹취속기사무소를 통해 녹취록 인증을 받아야 한다. 소송의 증거로 제출하려면 PDF파일로 변환하여 전자소송사이트에서 업로드해야 하고.
<공증인법>은 작년 12월 20일 개정하여 올해 6월 20일 자로 시행 중인데 개정이유 중 하나가 촉탁인이 공증사무소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법무부 전자공증시스템을 통해서 원격 전자 공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걸 큰 성과로 홍보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앞날이 암울하다.)

 

203쪽

 

과거 신용 한도는 오프라인 세상의 자산, 예컨대 주택, 저당물, 자동차 등을 근거로 계산했다. 즉, 개인의 신용 한도를 오프라인 데이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오프라인 데이터는 보고서를 수정하거나 허위 증명서를 떼는 방법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다. 조작이 가능한 이유는 신용 한도 평가에 이용하는 데이터의 종류가 몇 안 되기 때문이다.

 

206쪽

 

2016년 4월 항저우는 중국 최초로 데이터 대뇌를 구축한 도시로 거듭났다. 항저우의 대뇌는 각각의 도로에서 수지한 데이터를 감시관리 시스템에 전송하고, 데이터의 경맥과 정맥을 뚫어 누적된 데이터를 서로 교환하며 도시의 눈(CCTV)와 손(교통정리)이 조화를 이루게 한다. 데이터를 잘 이용하는 것은 항저우시의 꿈에서 항저우 내 수십 개 기업의 꿈이 되었다. (중략) 데이터는 도시의 대뇌를 토대로 도시의 부가 되었다.

 

241쪽

 

알리윈의 역사적 사명은 전 세계 최초로 컴퓨팅을 공공 서비스로 전환해 경제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만드는 일이다.

 

297쪽

 

도시 대뇌란 인터넷 인프라와 도시의 풍부한 데이터 자원을 이용해 도시 전체를 실시간으로 분석함으로써 사람의 두뇌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공공 자원의 효과적인 분배, 사회질서의 개선,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 추진을 도모하는 것을 말한다. 도시 대뇌의 기본 사상은 도시 발전을 꾀할 때 토지 자원보다 데이터 자원을 더 중시하는 데 있다.

 

299쪽

 

모든 혁신 기술은 도시 문명 발달을 이끈다. 증기기관 시대에 도시를 상징하는 것은 도로였고, 전기 시대에 발전한 도시를 상징한 것은 전력망이었다. 인터넷 시대에는 데이터가 중요한 자원이다. 이제 도시는 데이터 대뇌를 구축해 다시 한 번 문명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160년 전 런던은 최초로 지하철을 개통했고, 135년 전 맨해튼은 최초로 전력망을 건설했다. 앞으로 중국은 도시 대뇌를 완전히 새로운 인프라로 건설해 전 세계에 탐색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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