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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햇볕 장마당 법치(2017)

독서일기/북한

by 태즈매니언 2018. 10. 1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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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각 언론사 기자님들이 쓰신 북한에 대한 책을 세 권 연달아 읽게 되었다. 주성하 기자님의 <평양자본주의 백과전서>를 읽은 바로 다음에 이 책을 봐서 다행이고, 다른 분들도 이 순서로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

 

북한 주민, 특히 정권의 기반이자 수혜자들인 평양시민들조차도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상황이 현실이라지만 이 정도 수준은 서아프리카의 빈국에 사는 주민들도 충분히 체득하고 있는 정도이고, 폴 콜리어가 분석한 빈곤국가(밑바닥 10)의 사례에서처럼 법치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빈곤을 탈출하여 장기적인 성장의 길로 접어드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북한 주민들이 지금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사업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당간부들과의 상관습에 따른 경제활동은 한계가 있다. 계약 위반이나 채무불이행도 권력이나 폭력에 기대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신뢰는 희소한 자원이고, 거래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으니. 근대적으로 측량한 지적공부를 갖지 못해 토지 분쟁이 생겼을 때 부족 추장이 해결해주는 수준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종태기자님은 개성공단에서 남과 북이 쌓은 경험과 만들어갔던 규칙들, 중국이 경제특구에서 개혁개방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 작동에 필요한 제도들을 습득해온 사례 등을 토대로 상대방의 선의 혹은 낙관에 기대하는 햇볕정책의 한계를 법치 이식을 통해 보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경제특구를 통한 북한의 시장화와 법제 발전 지원전략은 시의적절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실험의 가장 큰 수확이 자본주의 법제도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경험이라는 주장도 공감하고.

 

부동산 등기제도 등 사적 소유권의 확립,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회계장부 작성법, 채무불이행과 불법행위책임에 기한 손해배상 및 책임재산 보전절차와 집행절차, 영장주의 등 인신보호, 죄형법정주의 등의 제도 없이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 수준이라도 경제성장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 분들은 별로 없으실 거다.

 

저자의 전망대로 신의주쪽의 황금평, 북중러 접경지대이자 부동항인 나선특별시, 개성공단 세 곳을 우선 경제특구로 지정해서 20년쯤 운영해보면서 자본주의 백신을 맞으면 북한도 정상국가로의 이행을 순조롭게 추진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북미핵협상이 타결되고 대북경제재재가 해결되어야 논의될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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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북한엔 지적도가 필요 없었다. 모든 국토가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땅에 경계를 그어 누구의 것이라고 등기(국가기관이 법적 절차에 따라 등기부에 부동산에 관한 일정한 권리관계를 적는 일)하거나 그 권리를 갖고 다툴 일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적도나 등기에 관한 관념 자체가 없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지 통치기구가 토지조사사업으로 마들어놓은 등기부가 있긴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노동당 정부가 전국토를 국유화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지적도와 등기부를 폐기해버렸다. 이후 북한에서는 땅에 대한 측량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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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제도를 만들어야 할 때 중국에서는, 우선 최고행정기관인 국무원이 심의를 거쳐 조례부터 제정한다. 그 다음 단계로는 조례를 시행하면서 성과와 문제점을 평가한다. 일정한 시기가 지난 뒤엔, 조례의 문제점을 수정해서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를 통해 법률로 제정한다. 세수 조례는, 세금을 어떤 절차로 어떻게 걷을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었다. 8년 뒤인 1992년에 징수관리법으로 법제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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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후 20여 년 동안 법없는 행정을 지속해온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행정의 필요성에 따라 그때그때 지침을 만들어 내부에 쌓아놓았다. 이른바 규범성 문건이다. 중국이 이런 규범성 문건들을 총정리해서 법률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2000년이다. ‘입법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률 제정 절차를 규정한 법을 통해 규범성 문건들을 법률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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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시장경제 발전에 필요한 법적 장치들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외부에서 북한 당국에 이런저런 제도를 입안하라라고 해봤자 씨도 먹히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북한이 특구에서 직접 시장경제에 필요한 법률제도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북한은 특구에서 여러 제도를 실험하면서 체제에 부담이 덜한 법안부터 점차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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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경우, 입주 기업들과 남측 관리위원회가 북측에 꾸준히 행정소송제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끝내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북측의 개성공단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에 제정된 나선경제무역지대법 제83조에 행정소송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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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3국이 맞닿아 있는 나선은 지리적 경제적인 가치가 매우 높으며, 한국과 북한만이 관여했던 개성공단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도 참여하기에 사업의 안정성이 더 높다. 예컨대 나선특구에서라면 하루아침에 개성공단을 닫는 식으로 사업을 접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개성공단에서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참고하여 나선특구에 이미 세금, 회계, 부동산, 분쟁해결 등에 대한 여러 법제도를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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