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종교적 병역거부로 인해 2010년 3월 12일부터 2011년 6월 30일까지 지금은 광명으로 이전하면서 사라진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했던 청년의 감옥생활에 관한 기록.
이 책에 대한 호평은 페북을 통해 접했지만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동의를 못하거니와 4주간의 신병교육대 과정만 이수하면 사실 병역이라고 할 수 없는 의무경찰·의무소방과 같은 유사 대체복무가 지금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왜 스스로를 전과자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대체복무제가 입법화될 예정이라 지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바이벌 매뉴얼도 일부러 찾아보는데 4주간 훈련을 통해 전쟁이나 외계인 침공같은 대재난이 벌어졌을 때에 살아남기 위해 총 쏘는 법이라도 배워두면 좋은 것 같은데. --;
(차라리 미국처럼 국가가 부과하는 모든 의무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자들이라면 이해하겠는데 병역의무만 거부하는 것은 잘..)
읽지도 않았으면서 몇달 전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은 분이 떠올라 저녁 먹는 자리에서 선물했었다. 내가 한 책선물 중에서 받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시더라.
(몰랐는데 선물받으신 분이 작가 현민을 실제로 아는 분이었다.)
명색이 변호사라지만 행형절차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형사정책을 다룬 책 몇 권 읽은 것 뿐이고, 구치소나 교도소 변호인 접견을 가본 적도 없다.
감옥이라고 하면 고등학교 때 자습시간에 돌려봤던 <뺑끼통>이나 <범털과 개털>에 묘사되었던 선정적인 공간 아니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야생초 편지>같은 정치범들의 옥중수기 기억 밖에 없다.
오히려 디씨에 한 주갤러가 연재했던 <교도소 일기>(정확히는 ‘구치소’ 체험담이지만)가 감옥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주더라.
비록 8-9년 전 경험담이긴 하지만 평생 가볼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교도소가 어떤 곳인지 가장 상세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그래서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이 책을 교정직 공무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만, 병역거부를 선택한 이가 1년 6개월의 복역기간 중에 가석방을 신청했고, 한 차례 반려되자 재차 신청해서 조기 출소한 것은 좀 이해가 안되더라.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이 병역거부의 결단을 누를 정도였을까?
인상깊었던 부분들을 좀 많이 인용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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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쪽
매년 한국에서는 700여 명의 젊은이가 중립을 지키기 위해 입영 대신 수감을 택한다. 이 수치는 전 세계 병역거부 수감자 중 90% 이상을 차지한다.
116쪽
언론에는 범죄자를 먹여살리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나 막대한지에 관한 보도가 적지 않다. 반면 재소자의 소비가 독점 업체인 교정협회에 가져다주는 이익에 관한 통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143쪽
‘세탁’은 수용자의 수의나 담요 등을 관리하는 곳으로 상급 경제사범이 모여 있는 작업장이다. 세탁은 영등포교도소에서 자유롭고 여유로운 부서로 손꼽히며 재소자 중에는 영자신문을 구독하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유명하다.
(중략)
‘원예’는 세금을 포탈한 고위 공직자, 비리를 저지른 군인 장성, 전직 농협중앙회장들이 집합한 작업장이다.
154쪽
노역수(노역장 유치)라고 하면 소에서 막노동이라도 시킬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름은 노역수지만 삼시 세끼 먹는 일이 이들의 감옥생활 전부다. 짧게는 사나흘 길어야 한두 달 동안 교도소에 머무는 재소자를 출역시키는 것은 징역수에게도 부담이 된다.
166쪽
교도관은 서비스노동을 수행해야 하지만 수인의 비서(‘여성화’)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반면 재소자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무력한 대상(‘유아화’)이 되는 일에는 저항해야 한다. 재소자든 교도관이든 인격체로서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한 감정의 핵심에는 공통적으로 남성성이 도사리고 있다.
171쪽
간병, 영치, 보안과, 교무과 등의 소지들이 하는 활동은 어디까지나 공식 규정이 아니고 암묵적으로 허가된 일이다. 이 소지들의 예외적 노동은 한국 감옥의 관례다. 슬슬 소지가 부족해지겠다 싶으면 간수들은 습관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에게 묻는다.
“너네 형제 언제 또 들어오냐?”
법질서 수호를 표방하는 교도소는 비합법적 노동을 토대 삼아서 작동한다.
196쪽
재소자를 감시하기 위해 감방에는 스위치 없는 형광등이 밤새도록 켜 있다. 이불을 뒤집어써 몸을 완전히 가릴 수도 없기에 재소자들은 안대를 하고 잠을 청한다.
(탈옥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형자는 머리를 내놓고 자야 한다.)
204쪽
감방생활이 길어지면서 나는 자해충동에 시달렸고 수감자들이 손목을 긋거나 못을 삼키는 까닭을 이해하게 됐다.
감금된 몸의 고통은 엄연하지만 좀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데 반해 손수 내는 상처는 육안으로 보이도 인과도 확실하니까 진정효과가 있다.
230쪽
구치소나 교도소에 입소할 경우가 생긴다면, 가급적 금요일은 피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말에는 행정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물건도 구매할 수 없어서 독방에서 지내는 동안 무인도에 불시착한 것과 유사하게 생활했습니다. 페트병 하나를 구할 수 없어서 식수를 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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