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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플로리다/이원호, 이종호, 서민철 역] 도시와 창조계급(2005)

독서일기/도시토목건축

by 태즈매니언 2019. 2. 2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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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시점에서는 그다지 신선해보이지 않지만 2005년에 나왔다는 걸 고려하면 통찰력있다. 자신의 논문들을 모았고, 공동번역자들도 지리학자라서 얇긴한데 대중교양서는 아니라 권할 정도는 아니지만.

 

번역하신 분들이 출연연 출신의 교수와 출연연 재직자라 괜히 반가웠다. 연구보고서 작성 외에 대학출판부나 KDI의 KSP사업처럼 이런 번역서 출간도 사업으로 좀 지원해주면 안될까?

 

창조성과 도시에 관한 리처드 플로리다의 견해는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 관용(Tolerance)를 경제 성작의 핵심이라고 보는 저자의 'T모델'로 요약된다. 너무 경영학스럽긴 하다.

 

'창조계급'이라는 말이 저자의 주장에 대한 비난을 불러온 것 같은데 저자는 전체 노동시장 참가자중 30% 가량의 지식집약 산업 종사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농림수산업, 생산직, 저숙련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제외하면 될 것 같다.

 

전 정권이 실체모를 '창조경제'를 '창조계급경제'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난, 한국이 빚어낸 창조경제의 보석인 수도권에 살다가 연기군을 모태로 급조된 인구 30만대의 신도시로 옮겨와 살고 있다. 운전을 안하고 싶어도 차로 가면 9분인데, 시내버스를 타면 42분이 걸리고, 버스의 배차간격은 평균 15~20분이니 내키지 않는 운전을 피하기 어렵다.

 

차로 직장과 식장만 오가면 주민들을 만나거나 가로변을 걸을 일도 없고, LH가 기계적으로 지은 아파트와 상자형 근린생활시설은 아무런 심미적인 자극도 주지 못한다.

 

인도음식을 파는 식당도 한 곳 뿐인데 인테리어도 꽝이면서 서울 어지간한 동네보다 50%는 더 비싸게 판다. 그러니 소득이 괜찮고 주거비가 저렴해도 만족할만한 경험 소비를 누리기 어렵다. 이 책에도 게이지수가 나오지만 세종시는 애를 안낳고 가족이나 친척과 유대가 약하고, 교회같은 종교결사체와도 묶여있지 않은 요즘의 젊은 맞벌이 부부들이 좋아하기 어려운 도시다.

 

지방도시가 잘되려면 서울과 같은 도심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라이프스타일 어메니티를 제공해야하는데, 층고가 높고 개별세대의 테라스공간이 제공되는 특화설계 공동주택이나 타운하우스같은 주거 형태를 장려하면 어떨까?

 

한국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 아파트단지를 넘어설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겠지만 아파트단지와 교외의 단독주택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거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니, 이들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라이프스타일 어메니티를 제공하면 그게 인재를 끌어들이는 경쟁력이 될 것도 같은데... 아마 이런 시도가 나오더라도 세종시가 아닌 판교나 광교, 분당에서 나와서 성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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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쪽

 

오늘날 지역 간 경쟁에서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의 관건은 지역 우위를 창출하는 인적 자본 혹은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소의 질은 지역 경쟁 우위의 핵심 요소가 되었으며, 인재를 유인할 수 있는 장소의 질을 구축하는 것이 하이테크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지역들의 핵심적인 전략이 되었다.

 

175쪽

 

보헤미안 지수는 대도시 지역 내 작가, 디자이너, 음악가, 연기자, 감독,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무용가의 수로 측정하는데, 종래의 어메니티 척도, 즉 레스토랑 수, 박물관 수, 교향악단 수 등과 같은 척도보다 훨씬 훌륭한 척도이다. 보헤미안 지수는 어메니티의 생산자를 직접 측정하기 때문이다.

 

215쪽

 

많은 창조적 노동자들은 필요한 모든 것들이 근처에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복합 용도의 직주근접형 도시를 좋아한다. 창조 경제에서, 시간은 유일하게 재생이 불가능한 자원이며 소중한 것이다.

 

221쪽

 

창조 경제는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하고 있다. 즉경제적 지위, 문화적 견해 그리고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과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구분은 창조계급이 오만하고, 쾌락주의적이며, 제멋대로인 사람들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균열은 미국사회의 구조에 깊게 퍼지게 되고, 이로 인해 글로벌 창조 경제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와 도전들에 대해 일관되고 전향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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