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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오카 겐메이/허보윤 역] 디앤디파트먼트에서 배운다(2013)

독서일기/에세이(외국)

by 태즈매니언 2019. 3. 2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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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자의 책이라 혹시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처럼 개똥같은 소리면 어쩌나 두렵긴 했다. 하지만 일본 여행하다가 가봤던 <D&Department>라는 생활용품샵은 다이소, 세리아, 쓰리코인즈부터 무인양품까지 온갖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일본에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었기에 이 책을 샀다.


이 책은 '롱 라이프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예를 재발견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쇠락하는 지방의 매력과 공동체의 끈끈함을 살릴 전초기지들을 일본 46개 도도부현에 한 곳씩은 세우고 싶어하는 65년생 디자이너가 14년 동안 노력해온 결과물이 담겨 있다. 역자인 공예이론 교수님은 이런 저자의 취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번역을 하셨고.


내 개인적으로는 한 20년 후에 은퇴하고나면 변호사일을 하고 싶지 않다(가능할지는 잘 모름 —;). 소일거리삼아 연륜이 덕목이 되는 빈티지상점 또는 빈티지까페를 운영하고 싶다. 친구들이 모이는 사랑방 노릇도 겸하고.


그래서 어떻게 했길래 빈티지 물건을 취급하는 라이프스타일샵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저자가 첫 매장을 낼 때의 목표가 일본 제일의 재활용품 가게를 세우는 것이었으니. 같이 공유한 드로잉으로 <D&Department> 사업모델의 핵심을 표현한 것만 봐도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지?


어찌보면 아미쉬 공동체들의 철학과 통하는 부분이 있고, 퇴행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갈수록 노동에서 사람이 소외되고 있고, 지방의 공동체가 해체되어 가는 상황에서 주목할만 시도라고 생각된다. 물론 아직 일본에서도 열댓 곳의 매장에 불과하고, 각 지방의 점주들에게 돈은 본업을 통해 벌고, 이 <D&Department>는 일종의 사회에 대한 봉사로 생각하고, 적자나 보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라는 저자의 당부처럼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참고할만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일본 제2의 가구회사 가리모쿠사가 1960년대에 만들었던 가구의 가치를 재발견한 계기를 알았다. ‘가리모쿠60'이라는 라인업을 통해 지금까지 널리(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게 만든 게 바로 60년대 가리모쿠 제품의 디자인과 내구성에 감탄한 나카오카 겐메이의 소개덕분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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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좋은 디자인이란 올바른 생각을 따르는 디자인이다. 좋은 물건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지닌 제작자가 지속적으로 꾸준히 만들어내는 물건, 사용성과 내구성이 떨어지지 않고 고장이 나면 수리해서 다시 쓸 수 있는 물건, 판매한 물건을 후에 가게가 다시 사들여 재판매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수명이 긴 물건이 바로 좋은 디자인으로 만든 사물이다. 그러한 사물을 대하는 손길에는 제작자에 대한 고마움과 물건에 대한 애정이 듬뿍 실린다. 인간과 사물의 바람직한 관계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관계가 역사를 낳고 추억을 쌓고 인생을 만든다.

 

45쪽

 

중고 시장에서 찾아낸, 형태가 아름다운 가구나 그릇들은 알고 보면 대개 1960년대에 제조한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는 세계적으로 굿 디자인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과 부흥이 일단락되고, 견실한 디자인으로 생활을 풍성하게 만들고자 했던 시대였습니다.

 

물건을 단순히 양산하거나 유행시키는 것만이 아닌 제조업자도, 소비자도, 또 굿 디자인 운동을 장려하던 국가도 '좋은 디자인'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미 생산이 중단된 1960년대의 가구나 그릇들을 재활용품으로 판매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원 제조사에서 복원, 생산하여 창업 때의 초심으로 되돌아 가보자는 의미를 담은 브랜드를 기획한 것입니다. '60비전'이라는 이름으로 12개 사가 참여하는 브랜드 사업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53쪽

 

지역점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1. 본부가 선택한 롱 라이프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것
2.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일과 물건을 꾸준히 소개하고 판해하며 워크숍 같은 모임을 만들어 교류의 장이 되는 것
3.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84쪽

 

불편한 장소에 있는 가게에 찾아오는 사람은 집을 나설 때부터 '오늘은 그 가게에 가자'라는 의지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아무 정보 없이 지나다 불쑥 들어오는 사람이 아닌 것이죠. 우리 같은 가게는, 의식이 높은 손님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96쪽

 

롱 라이프 디자인을 위한 가게를 운영하면서 특히 신경 써야 할 점은 매장에 변화를 주는 일입니다.
(중략)
매장에 독특한 변화를 주는 데에 재활용품의 역할이 큽니다. 재활용품은 대부분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니 팔리고 나면 다음에 또 언제 들어올지 모릅니다. 재활용품은 매입 가격이 비교적 싸고 재고 위험이 적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한 재활용품은 지역적 특성이 담겨 있기도 하고, 특히 가치 있는 디자인을 순환시킨다는 점에서 디앤디의 신념과도 잘 부합합니다.

 

127쪽

 

1960년대에 많은 일본 디자이너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제품 개발에 몰두했고, 훌륭한 디자인이 다수 탄생했습니다. 당시 디자이너들은 잘 팔리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960년대 디자인 중에 우수한 것이 많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2000년 디앤디 개점 이전, 재활용품점에서 좋은 디자인의 중고품을 사 모을 때였습니다. 디앤디 까페에서 사용할 의자로 1960년대 가리모쿠 의자를 샀는데, 나사가 빠져 있어서 가리모쿠사에 문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품이 아직 단종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의자를 디앤디에서 팔기 시작하자 매장에서도, 잡지 등의 언론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가리모쿠사와 힘을 합쳐 '가리모쿠60'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것이 '60비전'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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