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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2017)

독서일기/법률

by 태즈매니언 2019. 5. 2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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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페친들이 이 책을 추천했는데도 난 읽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차별은 나쁜 것이 아니다. 인류의 번성은 대면 집단의 크기를 넘어선 규모로 공통의 가치를 찾아 협력하고, 집단의 단합을 저해하거나(도덕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투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공통의 가치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이들과 대결하며 보다 나은 협력의 방식을 찾아온 여정이니까.

 

성적 지향과 인종 등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진화상 유리한 형질들에 대한 인식의 발현인 미의식에 따른 차별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전자에 대해서는 민감해하면서 우월한 외모에 대해 하악하악 거리는 모습도 좀 그랬다. 매력 자본이 바닥인 사람들에게 너나없이 관심주지 않는 것도 차별 아닌가? 꼭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들을 때만 정체성을 부정당한는 심정을 겪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던 피터슨의 강연 영상을 보면서 남용의 위험이 있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집착보다는 더 많은 표현의 자유로 사상의 자유시장을 지켜가는게 더 나은 방식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했고.

 

한국사회의 기준에서 많은 부분에서 차별받을 걱정을 안해도 되는 다수자의 교집합 한가운데 있는 내가 유일한 소수자 정체성인 '전라도 출신'이라는 걸 가지고 출신지역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행사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주저되더라.

 

경기도 외곽 공단 기숙사에서 사는 청년이 LGBT 인플루언서들에 대해 포털 댓글이나 키보드배틀로 혐오발언을 쏟아내며, 불안정한 주거, 단순반복적이고 장시간의 업무, 한창 테스토스테론이 끓어오르는 나이에 구애경쟁에서 뒤쳐진 데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를 풀며, 동조자를 구하는 행위를 차별금지라는 도덕의 갑옷까지 입고,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가치관과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존경하던 분께서 전라도와 5.18에 대해서 수위높은 혐오발언을 계속 쏟아내시는 걸 읽다보니 너무 스트레스받아 언팔로우를 했다. 차단도 아니고 페북 언팔이 별거냐 싶긴 한데 혐오표현을 그냥 보고 넘기기도 힘들었고, 이 분과 동조자들에게 댓글로 뭐라고 하면 적절한 반응일까? 이렇게 쓰면 전라도 출신이라 저런다라고 생각해서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이 똑같은 고민을 내가 왜 하고 있나 싶더라.

 

난 전라도에 대한 그 분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았고, 그저 그 분과 나와 맞는 부분이 있으니 계속 즐겁게 교류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내 자신의 모순을 깨닫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다행히 저자는 혐오표현의 형사범죄화라는 해법을 보도처럼 휘두르지 않고 혐오표현과 차별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과 기존의 논의들을 잘 설명해주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혐오표현이 발흥하는 사회경제적인 원인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고, 메갈리아의 미러링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호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부분은 걸렸지만 혐오표현과 차별의 문제에 대해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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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쪽

 

연구자들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대략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이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둘째, 혐오표현은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셋째,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160쪽

 

한국처럼 표현의 자유의 보장 수준이 낮은 경우라면 혐오표현 금지법의 도입이 양날의 칼이 될 공산이 크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들이 남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가 추가된다면, 국가 규제의 총량이 확대되는 결과를 낳고, 결국 본래 의도와는 달리 '국가가 나쁜 표현을 금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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