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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 식탁 위의 한국사(2013)

독서일기/음식요리

by 태즈매니언 2019. 6. 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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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중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냉장고 속 재료로 세 끼를 해먹고, 낮잠도 두 번 나눠자면서 소설 <누은 배>와 20세기 한국의 음식문화사를 다루는 이 논픽션을 읽었다. 아주 만족스런 휴일이구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민속학 연구자로 계시던데 식문화에 관한 고문헌과 근대문헌과 함께 일본과 중국 등 당대 동아시아의 음식문화와 식음료 산업의 동향까지 풍부하게 알려주고 있다. 물론 500페이지가 넘는 본문 뒤에 각주와 참고문헌, 색인까지 충실하지만 본문에서 이미지들을 곁들여가며 본인이 인용한 원자료를 발췌해서 소개하고, 연관된 세계사의 지식들을 언급해주니 독자입장에서 참 고마운 저자였다. 벽돌책의 장점이 바로 이런 거 아니겠나? 들고 읽기 불편한 것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다. 품이 참 많이 들어간 성실한 연구자의 역작이다.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현대의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들 중에서 소위 '전통'이라는 호칭이 붙은 음식들 중에서 그 기원이 19세기말 이전의 조선시대로 까지 올라가는 것들은 별로 없다는 걸 충분히 알고 계시리라. 이런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음식 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하고 싶다. 거시사와 미시사가 어우러지는 재미가 있는 분야다.

 

난 <미스터 션사인>에 나오는 쿠도 히나의 글로리 호텔의 모델이 러시아 공사관 칼 베베르의 처형인 인연으로 조선에 왔다가 왕실의 서양음식 및 행사담당자가 된 손탁 여사가 지은 러시아식 호텔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20세기 한반도의 음식문화사에 대한 조망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페이지인 515페이지의 세 문장만 보더라도 저자의 식견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아~ '혼종'이란 말이 참 좋다. ㅎㅎ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경험한 혹은 경험할 세계의 다양한 음식은 또 다른 문화적 혼종성(Cultural Hybridity)을 한국 음식과 음식점에 제공해줄 것이다. 또한 균질화에 대항하여 오래된 음식과 조리법을 발굴하고 부각시키는 일도 상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지금은 한국 음식점의 균질화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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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쪽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이 주로 거주했던 서울 장충동, 충무로, 필동 일대는 1945년 연말이 되자 적산가옥 천지가 되었다. 평양이 공산화의 길로 가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 챈 평안도 부자들은 적산가옥을 미군정청으로부터 사서 이사를 왔다. 식민지 시기 일본인 주거지가 해방 공간에서 평안도 부자들의 거주지가 된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서울의 장충동과 충무로, 그리고 필동 일대에 평안도식 대만두와 냉면을 판매하는 '면옥'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89쪽

 

1930년대 이래 지금까지 생일, 돐, 회갑 같은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당면잡채는 20세기 전반기 제국 일본에 편입되었던 중국의 동북 지역과 한반도에 살았던 조선인, 중국인, 일본인의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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