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읽었던 주영하 박사님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가 인상 깊어 그 분의 전작을 봤다. 학부 전공은 역사학, 석박사과정에서 문화인류학과 민속학을 하셨구나.
이 책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발표한 논문과 학술지에 실은 글들을 모아 정리한 책이라 내용이 아무래도 전문적이고 좀 어려웠다. 그래도 50년동안 한국의 식문화를 연구한 연구자들의 계보에 대한 논문까지 쓰셨을 정도로 인문사회계쪽으로는 한국의 식문화에 대한 손꼽히는 연구자의 글이 어떤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2001년에 창업해서 북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나도 가봤다) <한라산>의 창업주 장문덕씨와 도쿄 쇼쿠인도리에서 한국음식슈퍼마켓 <한국광장>을 경영하는 김근희(사회학 박사출신)님을 인터뷰한 내용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런 분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적극적인 태도를 나도 좀 배워야 하는데. ㅠ.ㅠ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에서 독창적이라고 느꼈던 설명과 주장들이 대부분 이 책에 담겨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아마 끝까지 정독하긴 힘들었을 듯.
주영하 박사님은 '음식학'이라는 학문의 분과가 대학의 정식 학과로 자리잡게 만드는 것이 필생의 소망이신 듯 한데 본인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계시고, 이공계 기반의 식품공학에서 출발하신 분이 나머지 절반을 채워줘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걸 보고 감탄했다.
주영하 박사님과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기업연구소에서 실무연구를 하신 최낙언님을 교수진으로 모시고 '음식학'이라는 분과를 선점하고자 하는 대학이 한 곳쯤은 있을만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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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共食)'은 공동운명체의 이념 및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 공식의 주최자와 참여자의 관계, 주최자와 참여자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 식탁에서 앉는 자리, 식사 중의 대화와 의견 교환방법, 음식 행위의 예법, 식사 후 음식물의 증여와 분배 등에 정치와 권력의 차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음식을 둘러싼 인간의 행위는 특정 조직의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37쪽
음식의 역사를 목마름의 역사에서 깨우침의 역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만들어진 역사, 오래되었다고 기억하는 역사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서 역사의 변환이 알려주는 삶의 지혜를 음식학 연구에서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음식의 문화에 대한 연구가 서로 같음과 다름을 보여줄 것이고, 그로 인해 음식의 역사는 마침내 탈역사의 위치로 전환되리라 믿는다.
94쪽
서로 다른 문화에서 음식생활을 공유한다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생활과 사유'를 이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가장 보수적인 음식생활을 서로 이해하는 일은 상호간의 문화적 이해를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매개물이 된다.
그래서 나는 한국정부나 한국사회에서 '음식한류'를 공세적인 한국문화 전파로 이해하지 말고, 아시아인의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음식한류'와 함께 '음식일품'과 '음식화풍'도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인식되어 상호 이해를 돕는 문화적 연대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2008년도에 기고하신 글인데 소망이 성취된 듯 싶네요.ㅎㅎ)
153쪽
나는 한국음식을 세계에 홍보하면서 식품학자를 비롯하여 정책입안자나 식품업체 종사자가 가장 내세우고 싶은 전략은 '영양학적 우수성'이라고 본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국의 모든 음식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원리에서 만들어졌다."라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의학에서 이미 주장한 이 논리가 한국음식에 적용되는 것은 결코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음식이 모두 몸에 좋은 것이라는 믿음은 한국음식이 아닌 것은 '약식동원'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역설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러한 인식을 '영양 민족주의(nutritional nationalism)'이라고 규정한다.
380쪽
제4줄의 제물로 나오는 과(果)는 과일을 뜻한다. <주자가례>에서 여섯 그릇을 놓도록 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다만 그 계절에 나는 과일을 풍성하게 놓아서 조상에게 새로 수확한 물건을 천신하도록 한 데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에 반해 <사례편람>에서는 과일을 네 그릇만 놓도록 했다. 네 그릇의 의미 역시 분명하지 않지만, 간소화를 모색한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이것이 적용되면서 생거난 오해들이다. 즉 홍동백서((紅東白西)((紅東白西)와 조율이시(棗栗梨枾)가 그것이다. 보통 노론에 속하는 집안에서는 '홍동백서'를 강조했고, 남인의 집안에서는 '조율이시'를 내세웠다고 한다.
(중략)
그러나 <주자가례>에는 이러한 기준이 없다. 단지 집안마다 다른 격식을 갖추기 위한 규칙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이러한 규칙의 무조건적 준수보다는 유교의 이념적 이향에서 출발하여 음식의 상징성을 살피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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