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에이모 토울스/서창렬 역] 모스크바의 신사(2016)

독서일기/북미소설

by 태즈매니언 2019. 9. 9. 21:29

본문

 

700페이지 짜리 소설을 이렇게 정신없이 몰입해서 본 적도 오랜만이네요. 오늘 새벽 3시 30분까지 읽다가 출장 때문에 억지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 7시 무렵 부산행 KTX 타자마자 바로 이어서 읽었고요.

1922년부터 1954년 사이의 소련 모스크바를 주요 배경으로 전개되는 소설입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 좀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겠지 싶지만 그런 지식이 꼭 중요한 것 같진 않아요. 심지어 저자 에이모 토울스는 이 작품의 초고를 완성할 때까지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 가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토울스가 약간 어릿광대같은 악당 캐릭터,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가족이나 사적인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 점 때문에 전 이 작품이 1920~50년대 모스크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옛 세대의 사람과 다음 세대와의 관계에 대한 소설이라고 느꼈습니다. 예전에 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과 파스칼 메르시어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매력을 하나로 모았달까요?

자식을 갖고, 손자들을 보는 일에 그리 끌리지 않는 저인데도 다음 세대를 위해 뭔가 역할을 하는 것이 앞세대로서 해야할 책임이자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에이모 토울스는 십대 시절부터 러시아문학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꼬박 3년을 바쳐서 써낸 작품이라고 하고요. 아무리 그래도 금융투자업계에서 20년 일했던 분이 이렇게 140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벽돌책 걸작을 쓰다니.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유툽에서 북토크 영상 몇 개 찾아봤는데 외모가 (머리숱 빼고 ㅠ.ㅠ) 제가 생각하는 로맨스 그레이의 이상형이네요. 읽으면서 제가 떠올렸던 50대의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의 이미지와 완전히 일치해서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 <카사블랑카>를 미리 봐두시면 추천드립니다. 전 아직 못봤는데 이 영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와요. 그리고, 전 브랜드도 첨 들어봤는데 스위스의 '브레게'社는 저자에게 자기네 시계 하나 선물해줘야 할 것 같더군요. 

--------------------------------------------

105쪽

두 방이 차이가 나는 더 큰 요인은 아마도 방이 생겨난 연원 때문일 것이다. 통제와 관리와 타인의 의도 아래 존재하는 방이 실제보다 더 작아보인다고 한다면, 비밀리에 존재하는 방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상상하는 만큼 넓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468쪽

"1916년, 러시아는 야만 국가였습니다. 유럽에서 문맹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인구 대다수가 변형된 농노제 아래 살았죠. 사람들은 나무 쟁기로 땅을 경작하고, 촛대로 아내를 때리고, 보드카에 취해서 벤치에 벌렁 드러눕고, 그러다가 새벽에 잠이 깨서는 자신들의 우상이나 성상 앞에서 겸손하게 굴었습니다. 말하자면 500년 전 선조들이 살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었던 셈이죠. 그 모든 동상과 성당과 오래된 제도들에 대한 우리의 경외심이 바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요?"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