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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영]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2018)

독서일기/농림축산

by 태즈매니언 2019. 11. 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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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혜님덕분에 알게 된 개에 대한 르포. 한국에 500만 마리 이상의 개가 반려동물로 키워지고 있고, 동시에 매년 100만 마리 이상의 개가 식용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어릴적 보성군의 시골에 살 때 부모님이 모두 직장인이셔서 오전에 학교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점심먹고 외갓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 마을엔 슈퍼 하나 없고, 또래 친구는 없었지만 외갓집에서 키우는 소, 염소, 닭, 오리, 개, 고양이 그리고 처마에 사는 제비들까지 내 놀이친구를 빙자한 장난감이 되어주었다.

 

여느 시골애들처럼 시든 푸성귀나 닭과 오리에게 개밥그릇에 잔반을, 무쇠솥에서 펄펄 끊인 쇠죽을 양동이로 담아 올기는 건 자청해서 맡을 정도로 즐거운 일이었고.

 

그 시절 복날 즈음이면 어른들은 밤나무에 매달아 개를 잡았고, 식구나 이웃들끼리 개다리짝을 나눴다. 키우던 개가 마루 밑에서 새끼를 낳으면 강이지들이 눈 좀 뜨일 때쯤 오일장에서 내다 팔아서 생활비에 보탰고.

 

법을 배우면서 동물을 '물건'으로 정의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기이한 상황들을 판례를 통해 접하면서 갸웃거리긴 했지만, 내가 반려동물이나 동물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선뜻 동조할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이런 경험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의 위계와 가치 차이가 있고, 결국 인간은 가축들을 이용하고 먹기 위해 죽이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서 종간의 합의가 있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전세계 동물들 중에서 인간이 주로 키우는 십여 종의 가축들이 지금처럼 엄청난 숫자가 될 수 있었을까? 결국 공진화이고, 사흘에 한 번도 식탁에 고기 반찬이 안올라오는 생활을 나는 다시 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부터 먹으면서 익숙해진 개고기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 한승태님의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개농장의 실상을 알고 나서 개고기를 끊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분들도 동참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진을 찍은 두 페이지는 이 책 내용 중에 아주 일부분일 뿐이지만 그 분들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반려동물로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고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개사육장을 제외한 강아지 번식장, 경매장, 유기견 공설 보호호와 사설보호소 등 소위 '개'산업이 어떤 시스템으로 유지되는지 거의 몰랐는데 4시간 동안 진행된 치열한 세미나를 참관하는 느낌으로 봤다.

 

르포라는 형식 덕분에 사람들의 말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데 천안시 보호소 입양센터를 운영하시는 '이경미 소장님과 김미지 센터장님'의 말씀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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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쪽

 

우리나라에서 개는 가장 나은 처지인 반려동물이자 최악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식용동물이다. 동종의 동물을 가족이자 음식으로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이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늕, 우리가 어디까지 연민을 확장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가장 가까운 동물과 가장 먼 동물 사이의 가교가 되길 바랐다.

 

117쪽

 

(이경미 센터장님) "우리가 소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 갖고 있는 게 뭘까요? 집? 자동차? 부동산 중개사무소에선 집도 보통 10년이라고 해요. 자동차도 그쯤되겠죠. 제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가장 오래 가지고 있는 건 반려동물이에요. 15년 이상, 20년 가까이.

 

그런데 시금치 한 단도 원산지를 표시하는 세상에 반려동물은 어느 번식장에서 태어났는지, 그 번식장 환경은 어떤지, 모견과 종견은 누구인지, 임신했을 때 모견은 뭘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면 생산업자는 시금치 한단 취급도 못 받고 시장에 나가는 강아지들을 어떻게 만들까요?

(중략)

가뜩이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강아지들을 개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소비자가 사가잖아요. 소비자는 아무 것도 모르니 자기 생각, 자기 기분대로 막 키우고요. 그런데 어떻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결국 소비자는 감당 안 되는 상품을 쓰레기처럼 갖다버려요. 그렇게 생긴 게 여기 있는 수많은 유기견이에요. 그럼 불량품 취급받으면서 버려진 이 많은 개의 뒤처리를 누가 할까요? 번식업자가? 정치인이? 아니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마음 아픈 사람이 하죠"

 

150쪽

 

나도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 많이 봐. 개새끼들 도와줄 여력 있으면 사람이나 도와주라고.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개새끼가 대수냐고.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여기 돕지 말고 저기 도와라, 얘를 구하지 말고 쟤를 구해라, 그런 소리는 누구도 구해본 적 없고 누구도 살려본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153쪽

 

어쩌다 봉사자들 따라 산책이라도 다녀오면 다들 견서 입구에서부터 안 들어가려고 엉덩이에 힘을 주고 버텨. 초보 봉사자가 뭣도 모르고 한 견사에서 한 마리만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그 녀석은 그날 밤에 죽어. 다른 개들한테 물려서.

(중략)

지자체 보호서에서 안락사당하게 생긴 애들이 사형수라면 얘들은 무기수야. 사설 보호소는 그냥 감옥이 아니라 무기수 감옥이야. 죄 없는 무기수들의 감옥.

우리 모두 유기견을 살리고 싶어서 구하잖아. 그런데 기껏 살려서 감옥살이 시키려면 뭣하러 구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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