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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죽고싶은 사람은 없다(2016)

독서일기/의학

by 태즈매니언 2020. 1. 13.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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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육아의 부담도 없고 즐겁게 주말부부 생활을 누리고 있는 공공기관의 한량이라고 보신다면 맞는 이야기다. 지금의 이 환경은 내가 내렸거나 그 선택에 따라온 선택들이 누적되어 조성된 것이니.

 

하지만 내 위험회피 전략보다 살면서 질병으로 고생해보거나 그다지 힘든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 행운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달 전 갑자기 생겨서 한 달 넘게 날 고생하게 만들었던 요통이 남긴 선물이다.

 

그 전에 있었던 소소한 불만들은 통증과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의 불편함을 마주보는 순간엔 신경쓸 겨를도 없더라.

 

내 자신이 정신적으로 그다지 강인한 편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최대한 피해갈 수 있는 고난은 피하려고 하지만 혹여 그런 고난이 닥치게 되면 이 책을 집어들고자 한다.

 

설령 이런저런 인생의 고난을 운좋게 피했더라도, 늙어서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 책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하리라.

 

그 전까지는 저렴하게 산 호주산 채끝살을 구워 만든 스테이크의 맛, 귀여운 초록복어들이 노니는 걸 보는 즐거움같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동전을 세는 수전노처럼 알뜰하게 챙겨야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충동을 겪을 정도로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몸으로 매일 최선을 다해서 환자를 진료하셨던 정신과전문의 故임세원 교수님의 1주기를 맞아 고인께서 남긴 메시지를 내 마음 안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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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쪽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힘겹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절망엣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죽음'을 떠올린다. 그 '떠올림'만으로도 죽음이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진다. 죽음이야말로 고통을 없애주는 가장 좋은 대안이란 믿음이 점차 강화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그것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느낄 때 자살을 시도하는 것일 뿐, 결코 죽음 자체를 원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83쪽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는 불안 그 자체의 속성때문이다. 불안은 기본적으로 예측 불가능성 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을 자꾸 변경함으롰 미래를 더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애매하고 불안한 상황이라면 한번 내린 결정을 자꾸 바꾸기 보다는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편이 훨씬 더 나은 데도 말이다.

 

190쪽

 

새로운 것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고 함께할 친구와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고난을 슬기롭게 견뎌 낸다. 그리고 그렇게 고난을 견뎌 내고 나면, 심리적으로 더욱 굳건해져 다른 사람들을 포용하고 도와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글므로 아무리 아프고 힘들고 괴로워도,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친구와 동료들의 삶에 대한 관심,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218쪽

 

결혼을 한 지도 20여 년이 되다 보니, 가끔 아내와 다툼이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우리의 유전자를 반반씩 가지고 태어난 우리 아이들의 열성팬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결국 어떤 상황에서건 대동단결하게 된다. 그것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는 내게 언제나 정신적으로 커다란 지지가 되어 준다.

(중략)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의미다. 삶의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좋아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남아 있다는 것은, 깜깜한 밤에 켤 수 있는 촛불 하나가 아직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비록 하나의 촛불은 매우 약한 불빛을 내뿜을 뿐이지만, 그 촛불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226쪽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날 때는 언제나 선의를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친절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중략)

나의 선의가 타인의 선한 반응을 이끌어 내고, 그 결과 타인의 성함을 경험하면서, 나의 모난 모습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을 느낀다. 우울감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에도, 내 과거의 삶을 스스로 가혹하게 비난하며 더 큰 괴로움에 빠진다든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내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게 됐고, 과거와 현재를 분리해 지금의 나를 스스로 위로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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