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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칸/김희경 김현경 역]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2012)

독서일기/교육

by 태즈매니언 2020. 3. 20.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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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 성적이 좋은 편이지만 학습교안에 짜맞줘진 일률적인 학교수업과 주구장창 문제를 풀어대는 입시공부는 증오스러울 정도로 끔찍했다. 헤르만 헤세가 1906년에 펴낸 <수레바퀴 밑에서>의 수도원 학교와 내가 다니는 학교가 무슨 차이가 있나 싶었으니.

 

고3 때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친구들과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우리는 나중에라도 절대로 이 시절을 그래도 좋았지. 혹은 즐겁기도 했다고 추억하지 말자'는 말도 했을 정도였다.

 

입시에서 해방된 대학시절에 나보다 한 살 위였던 이한씨가 한국 고교들의 주입식 입시교육을 혹독하게 비판한 <학교를 넘어서>와 <탈학교의 상상력>을 읽고 열광했던 기억도 나고

 

하지만 내 일이 아니게 되다보니 PTSD처럼 주입식 공교육 과정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만 담고 20년 동안 이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교육과 학교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혁명적인 책을 만나니 반갑다. <숨>과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에 이어 나의 세 번째 올해의 책 후보.

 

칸 아카데미의 창립자 살만 칸이 쓴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he One World Schoolhouse>다. 무상교육 냄새를 풍기는 번역판 제목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 중 아주 말단의 곁다리를 지칭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성인들은 10~20년 후에 발전할 분야에서 새로 생길 직업들을 본인들이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만큼 전통적인 직업들은 사라지거나 축소되리라는 것도 느끼고 있고.

 

하지만 자기 자식들이 무엇을 배워야할지 불확실한 시대에, 기존 공교육과정과 대학입시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적화 전략만을 추구하는 모습들을 자주 본다.

 

18세기 프로이센에서 고안된 현대 초중등교육 모델이 독립적으로 생각할줄 모르는 정치적으로 세뇌된 다루기 쉽고 충성스런 신민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안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공교육의 질식할 것 같은 고루함에 대한 경험이 폭넓게 퍼져있었던 차에 2012년에 시작된 '칸 아카데미'가 왜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왔는지는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나도 극찬하고 초중고에 재학 중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강력하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율성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어느 사회나 일정 부분(내 느낌으로는 30~40%)의 사람들은 18세기 프로이센에서 고안한 현재의 학교제도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조금 거친 표현일 수 있지만 아이큐가 80~100 사이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이고 지식을 조각조각 쪼개 놓은 학교덕분에 평범한 현대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련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살만 칸이 꿈꾸는 대안 교육 시스템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는데 수학과 과학에서야 가르치는 자신도 이해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크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그럴지 회의적이다. 가르치는 이의 봉사와 우애에 기대는 것은 나이브하지 않을까? 집중력과 참을성도 상당부분 유전적 재능의 영역인 것도 간과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고.

 

둘째는 칸 아카데미 사이트가 개설된 것이 2008년이고, 2010년 구글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기 시작한 때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예상보다는 칸 아카데미의 성과가 온라인 교육플랫폼에 치중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자신이 언급한 캐나다의 워털루대학처럼 대학 재단을 하나 매입하던가 아니면 새로운 대안 대학을 만들어서 초중등 교육부터 취업까지 이어지는 대안 교육모델의 베타버전은 제시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은데 말이다. (살만 칸과 칸 아카데미의 최근 활동에 대해 검색해보지 않은 상태에서의 인상비평이다.)

 

KIST 권석준 박사님의 최근 글, 임명묵님의 4년 전 페이스북 포스팅, 그리고 자녀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내 직장의 Seung Kook WU 박사님 덕분에 무자식 노선을 선택하면서 관심을 끊었던 교육문제에 대해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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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쪽

 

표준 교실모델은 수동성을 강화하고 교과 과정과 수업시간을 엄격하게 나누는 방식을 통해 '개인의 책임'을 평가절하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발휘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 가장 기본적인 결정을 내릴 기회조차 부정당한 채, 학생들은 전적인 헌신을 하지 못한다.

 

65쪽

 

생리학적 관점에서 배움이란, 우리의 뇌가 약간의 운동, 즉 정보를 소화하고 개념과 기억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운동을 했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신경세포에 변화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70쪽

 

주어진 수업시간에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범위와 조각 낸 단위별 교육을 추구하는 잘못된 열정 탓에 우리는 연관성 인식으로 학생들이 얻을 이득, 그야말로 생리적인 이득을 가로막는다. 관습적인 교육법은 지루할 정도로 일관적이다. 한 주제를 잡아 마치 그것이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양 다룬다.

 

118쪽

 

시험은 주어진 순간의 정해진 시간 안에 특정 주제의 일부에 관한 학생의 기억력과 이해의 '근사치'를 평가한다. 문제를 어떻게 내느냐에 따라 평가는 매우 크게, 무작위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중략)

잘 고안된 시험은 특정한 때에 누군가가 한 주제를 진정으로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잘 고안된 시험이라 해도 결과를 해석할 때에는 어느 정도 회의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262쪽

 

누군가가 실제로 만들어낸 창의적 생산물은 어떤 자료, 학점, 평가보다도 그 사람이 처음부터 시작해서 열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주는 최상의 증거다.

 

279쪽

 

진보하는 21세기 산업과 구식의 퇴화하는 산업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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