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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이승수 역] 내가 있는 곳(2018)

독서일기/유럽소설

by 태즈매니언 2020. 4. 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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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과 <저지대>로 접했던 소설가 줌파 라히리의 수필집같은 소설.

 

<저지대>의 소재도 그렇고 인도계 외모라 인도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작가일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벵골지방 출신인 인도계 가계이긴 하지만 런던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미국 로드 아일랜드주에서 살았다고.

 

이 수필집처럼 보이는 소설은 왜 이탈리아어로 썼는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프린스턴대 문예창작과 교수자리라는 후광을 버리고 이탈리아로 이주했더라. 이탈리아어로 쓴 수필집에 이은 첫 소설이고.

 

아무리 학창시절부터 이탈리아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꾸준히 언어를 공부해왔다고 하지만 자신이 손꼽히는 작가가 될 정도로 정밀하게 연마했던 태평양같은 언어의 바다에서 카스피해 정도의 바다로 자발적으로 옮겨간 게 신기하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작가로서의 성공과 유명세가 자신이 진정으로 쓰고 싶었던 자기치유적인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껴서였을까?

 

이 소설은 후반부가 될 때까지 주변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사생활 노출때문에 소설로 분류했을 뿐 이건 에세이가 맞지 않나? 라는 느낌으로 읽었다.

 

이탈리아 해안가의 작은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섬세하고 소극적인 싱글 여성의 이야기인데, 엽편소설들을 이어붙인 느낌이다. 챕터들은 제목도 그렇고 주로 특정 장소의 정경이나 그 장소에서의 기분을 다루고 있다.

 

둔한 나는 따라가기 어려운, 그리고 조금은 피곤한 섬세함이 깔려있는데 대신 감탄스러운 언어 표현들이 꽤 자주 등장한다.

 

내가 계속 혼자 살았다면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 사람으로 지냈을지 생각해보게 만든 책.

 

꽤 많은 챕터들이 엽편이나 단편소설로 읽어도 충분한데, 나는 <길에서(64~67p>와 <나의 집>(87~92p)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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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우리는 스치듯 지나는 순수한 애정의 순간을 누린다. 그래서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절대 선을 넘어갈 수도 없다. 그는 깨끗한 남자고, 내 친구와 아이들을 사랑한다.

비록 누구와도 내 인생을 나누지 않지만 따뜻한 포옹만으로도 충분한다. 양쪽 뺨에 가볍게 입 맞추고, 산책을 떠나고, 함께 잠깐 걷는 것만으로. 원하기만 하면 잘못된 그리고 부질없는 어떤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

 

45쪽

 

외롭고 집에서 나갈 때 불을 끄지 않더라도 혼자 사는 게 좋고 내 시간과 공간의 주인임을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면, 엄마는 날 못 미더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외로움은 결핍일 뿐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엄마는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나가는 작은 만족들은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에 대한 엄마의 집착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내가 보는 시각에는 관심이 없다. 내게 진짜 외로움을 가르쳐준 것은 바로 이 격차다.

 

59쪽

 

수영장은 아주 크고, 여러 레인이 있다. 거의 여덟 명이 다 찬다. 분리된 여덟 개의 삶이 서로 마주치지 않고 그 물을 함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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