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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2019)

독서일기/에세이(한국)

by 태즈매니언 2020. 4. 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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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출연과 자뻑멘트들때문에 약간 개그캐릭터로 인식되는 점 이 있긴 한데 '나름 화가'이자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님은 유익한 대중교양서를 꾸준히 펴내는 보기 드문 학자다. 국내 학자이고, 방송에 자주나와서 오히려 저평가받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평소에 엄근진한 50~60대 아재들을 자뻑 개그와 '내 다 알지~'라는 느물거리는 말투로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져 무방비항태로 만드는 솜씨가 일품이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2005)에서 처음 만난 재기발랄함이 이번에 나온 책에서도 여전해서 반갑고.

 

도무지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한국의 성인 남성들에서 시작된 고민의 화두가 <남자의 물건>을 거쳐 이제 '슈필라움'이라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처방하기에 이르렀는데 평소 내가 품었던 생각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남자의 평균수명도 80세에 육박하는 이 시점에 50대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서 한 수 가르쳐주는 아재들이 별로 없는데 그래서 더 귀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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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로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중략)
여수라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렸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다.

 

115쪽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대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206쪽

 

공간이 있어야 '자기 이야기'가 생긴다. '자기 이야기'가 있어야 자존감도 생기고, 봐줄 만한 매력도 생기는 거다. 한 인간의 품격은 자기 공간이 있어야 유지된다. 아, 자기 전에 그 공간에서 하루를 설찰하며 차분히 기도도 드려야 한다. 자다가 아예 영원히 잠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에 이미 여럿 그렇게 갔다.

 

211쪽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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