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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일] 삼순이(2019)

독서일기/한국사

by 태즈매니언 2020. 5. 31.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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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님의 담벼락에서 알게된 책인데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들'이라는 글귀가 마음을 움직였다.

 

종군위안부와 같이 정부가 관리와 운영에 개입한 정황이 있기는 마찬가지인 미군 기지촌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처럼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의 이야기는 노동운동의 주변이야기로 자리매겨졌는데, 이 세 직업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해 기록한 분이 계셨다.

 

세 직업 모두 그 연원이 일제시대부터 유래하는데 노비라는 신분적 예속에서 임노동계약관계로 변화했던 과정과 당대의 신문과 잡지에 등장하는 사료들을 찾아보고 정리해서 식모(1950~1970년대초), 버스안내양(1960~80년대초), 여공(1960~80년대말)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급증했다가 사그라드는 추이에 따라 잘 정리하고 있다.

 

여종이나 행랑어멈이 갑오개혁 이후에도 '머슴'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들이 내지 이주자들의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조선어멈'이라는 보다 나은 일자리가 없었더라면 신분적인 예속을 벗어던지기는 훨씬 어려웠으리라. 왜 식모들이 조선인 집보다 일본인 집에서 일하기를 선호했겠나.

 

가장 많았을 때도 3만 명에 불과했던 버스안내양은 식모와 여공에 비해서는 작은 일자리시장이지만, 산업화시대의 여성 서비스직 일자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저자가 한 꼭지로 넣은 것에 동의한다.

 

나는 79년생이라 84년 요금선불제와 하차문 자동개폐장치 도입 이전의 버스안내양을 알지 못한다. 버스안내양에 대한 증언과 기록을 읽다보니 1950년대에 시내버스운수사업을 시작한 사장과 그 자손들이 왜 지역의 유지노릇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 버스사업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1961년 집권 후 박정희 군부정권이 도시민들의 불만이 극심했던 시내버스운수업에 대해 그 해 연말까지 이뤄낸 개혁들을 보면 당시 도시민들이 쿠데타 정권을 지지했던 게 이해가 갈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요즘 중앙정부는 도시민의 대중교통정책을 지자체의 사무로 보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 대비된다. 그나마 '도시광역교통과'의 업무 중 광역교통무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라는 차관급 조직으로 분리되었지만 여전히 아쉽다.

 

 

여공과 관련해서는 1973년 구로공단 산업시찰 중 '다른 또래의 아이들과 같이 교복 한 번 입어보고 싶다"는 여공의 소원을 듣고, 대통령 특별지시를 내려 이듬해 법제화가 되었다. 1977년부터 종업원 1,000명 이상인 기업은 의무적으로 인근지역 학교 내 특별학급 또는 산업체부설학교를 설치운영하도록 한 사실이 인상깊었다.

 

개신교의 도시산업선교회가 70년대 여공들의 노동운동에서 기여했던 역할도 처음 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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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쪽

 

제일 먼저 부설학교를 설립한 기업은 한일합섬이었다. 한일합섬은 1973년 우리나라 최초로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재벌 기업이었다. 한일합섬은 1974년 1월 학교법인을 설립하고 한일여자실업학교로 전수학교 인가를 받아 3월 30일 69학급 규모로 개교했다.

(중략)

1977년 당시 한일여실은 전국 최대인 90개 학급에서 5,400여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3교대 근무에 맞추어 수업은 아침반 오후반 저녁반 3부제로 운영했다. 수업시간이 정규 고등학교와 같아 여공들은 쉬는 시간을 모두 학교에서 보냈다.

(중소기업 여공들은 수혜자에서 제외되어 1977년 당시 혜택을 받는 학생들은 전체 여공의 10분의 1도 안되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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